2024 | 04 | 20
15.8℃
코스피 2,591.86 42.84(-1.63%)
코스닥 841.91 13.74(-1.61%)
USD$ 1379.0 -1.0
EUR€ 1470.8 1.8
JPY¥ 892.5 -0.1
CNY¥ 190.3 -0.1
BTC 93,856,000 2,157,000(2.35%)
ETH 4,485,000 76,000(1.72%)
XRP 749.7 31.2(4.34%)
BCH 701,000 10,500(1.52%)
EOS 1,156 54(4.9%)
  • 공유

  • 인쇄

  • 텍스트 축소
  • 확대
  • url
    복사

고희 맞은 LG그룹, 매출 150조 글로벌 기업 '우뚝'

  • 송고 2017.03.27 14:38 | 수정 2017.03.27 15:18
  • 최다현 기자 (chdh0729@ebn.co.kr)

1947년 구인회 창업회장 '락희화학공업사' 모태

구인회-자경-본무 연이어 'R&D 중시 풍토' 계승

'LG사이언스파크' 기반 신성장동력 발굴 가속

ⓒ

1947년 창업한 LG그룹이 70살 생일을 맞았다. LG그룹은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이 락희화학공업사를 창업한 후 7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 LG로 거듭났다.

1947년 자본금 300만원, 직원 20명으로 시작한 락희화학공업사는 현재 국내외 22만2000명이 일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연 매출도 창업 당시 3억원에서 현재 약 150조원 규모로 증가했다.

27일 70돌을 맞은 LG그룹은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 마곡산업단지 'LG사이언스파크'를 기반으로 디스플레이올레드 1위, 세계 전기차 배터리 1위와 더불어 차세대 통신 혁신에 앞장선다는 전략이다.

지난 1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창업 70주년 기념사에서 "사업 구조 고도화의 속도를 더욱 높여 반드시 주력사업을 쇄신하고 미래 성장 사업을 제대로 육성해야 한다"고 당부했으며 "혼란스럽게 변하는 글로벌 사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영 세스템을 제대로 혁신할 것"을 강조했다.

◆연구개발 정신, '국내 최초'이어 '세계 최초'를 만들다

구인회 창업회장(가운데)이
 국내 최초 국산화 한 전화기로 시험 통화하는 모습.ⓒ[사진제공=LG]

구인회 창업회장(가운데)이 국내 최초 국산화 한 전화기로 시험 통화하는 모습.ⓒ[사진제공=LG]

LG그룹은 1947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부산 서대신동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제조사업을 하던 락희화학공업사는 국내 화학 산업을 선도했으며 연이어 전자산업을 개척했다.

LG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최초' 발명품은 한국 산업의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화장품에 이어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했으며 플라스틱 공업이 성장 한계에 놓이자 1958년 금성사를 설립해 전자산업에도 도전했다.

이같은 LG전자의 개척자 정신은 구인회 창업회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구 창업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같은 의지는 지금도 이어져 내려와 구본무 회장은 매년 초 'LG 테크노 컨퍼런스'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R&D를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잡았다.

금성사는 국산 라디오와 전화기, 흑백TV, 세탁기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로 42인치 TFT LCD를 개발하고 2006년에는 2600mAh급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처음으로 생산했다. 올레드(OLED)TV도 LG가 보유한 '세계 최초' 목록 중 하나다. 또한 플렉서블 와이어와 배터리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산업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

마곡산업단지에 건설하는 LG사이언스파크에는 2만2000여명의 연구인력이 융복함 연구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개발 메카 역할을 할 예정이다.

◆내실·정도 그리고 위기…선진 경영체제 자리잡아
70년대부터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커나갈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1970년 1월 취임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구자경 회장은 '내실 있는 안정 성장'을 표방했으며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양대 축으로 석유화학, 정밀화학, 반도체 등 첨단분야와 건설, 증권 등 서비스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70년대를 지나오면서 LG는 10개 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했으며 공장도 19개를 세웠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LG는 1983년 그룹 이름을 럭키그룹에서 럭키금성그룹으로 변경했으며 이후 석유화학산업 일괄체제를 구축하고 인공지능 전자제품, 반도체를 개발하며 세계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다.

1995년 1월에는 구본무 3대 회장이 취임하면서 'LG'라는 사명도 이때 도입했다. 이후 LG는 '정도 경영'을 내세워 이동통신과 LCD, 반도체, 에너지, 유통업에 도전해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1997년 한국을 휩쓴 IMF사태로 LG도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반도체와 카드, 증권 등 LG의 성장의 한 축이었던 계열사를 매각하는 진통을 겪었다.

위기를 극복한 후에는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가장 빠르게 선진 경영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LS그룹과 GS그룹으로 계열 분리를 단행하고 창업 이래 이어진 구-허 동업 경영 체제도 마감했다.

◆70주년 맞은 LG…'혁신과 변화로 영속하는 기업'

LG 시그니처 올레드TV W.ⓒLG전자

LG 시그니처 올레드TV W.ⓒLG전자

LG그룹은 올해 70주년을 맞아 혁신과 변화를 통해 영속하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수익성을 높이고 자동차 부품과 에너지 솔루션 등 신성장 사업에서의 경쟁력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프리미엄 제품 확대를 위해 가전 브랜드에서는 LG시그니처를 확대한다. LG시그니처는 기술 혁신으로 이룬 압도적 성능과 본질에 충실한 정제된 디자인, 직관적인 사용성을 갖춘 초프리미엄군 가전으로 올레드TV와 더불어 세탁기, 냉장고, 가습공기청정기 등이 있다. 시그니처 제품은 프리미엄 시장 공략과 더불어 브랜드 이미지 제고 임무도 맡았다.

더불어 LG그룹의 계열사들은 대규모 투자와 신사업진출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LG전자 신성장사업은 VC사업본부가 맡는다. VC사업본부는 GM 쉐보레 볼트EV 등에 차량용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카인포테인먼트, 공조 시스템 시장을 적극 개척 중이다.

LG화학은 자동차 및 기초소재 분야에 2조7600억원을 투자한다. 바이오를 비롯한 신성장사업도 육성할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도 올해 5조원대 설비투자를 진행해 대형 OLED생산량을 월 3만4000장에서 6만장으로 확대하고 P-OLED 패널 생산도 시작한다.

LG이노텍도 듀얼카메라와 차량부품 등 기존 사업과 함께 차량용 모터, 고효율 파워 부품 등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비한다. LG유플러스 또한 5G 통신 시장 진입을 위해 1조3500억원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에투자할 계획이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시황

코스피

코스닥

환율

KOSPI 2,591.86 42.84(-1.63)

코인시세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비트코인캐시

이오스

시세제공

업비트

04.20 13:53

93,856,000

▲ 2,157,000 (2.35%)

빗썸

04.20 13:53

93,738,000

▲ 2,228,000 (2.43%)

코빗

04.20 13:53

93,740,000

▲ 2,164,000 (2.36%)

등락률 : 24시간 기준 (단위: 원)

서울미디어홀딩스

패밀리미디어 실시간 뉴스

EBN 미래를 보는 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