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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RG발급 늦추며 ‘눈치보기’ 극심…속타는 조선업계

새 정부 출범 이후 책임론 피하려 여신확대 기피 경향 높아져
“저가수주 아니지만…” 2개월 기다려도 발급 시기 ‘묵묵부답’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7-05-04 16:30

▲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전경.ⓒ대우조선해양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 발급을 미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국책은행들이 차기 정부에서 제기될 수 있는 책임론을 의식해 '눈치보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글로벌 선사들과 수주계약을 체결한 조선업계는 언제 RG가 발급될지 모른 채 속만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아직까지 올해 수주한 선박에 대한 RG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달 4일 그리스 마란탱커스(Maran Tankers)와 31만8000DWT급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3척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들 선박에 대한 RG 발급은 금융권이 대우조선의 사채권자집회 이후 합의한 RG 발급 기준 적용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미뤄지고 있다.

기존 규정에서는 KDB산업은행이 RG를 발급해야 하나 새로 합의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RG 발급은 산업은행이 책임지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시중은행이 2차로 산업은행의 손해를 메꿔주는 복보증(2차 보증)을 서야 한다.

한진중공업은 올해 수주한 선박 6척에 대한 RG를 아직까지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3월 중순 그리스 선사로부터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4척을 수주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아프라막스 유조선 2척을 수주했다.

이들 선박은 모두 필리핀 현지법인인 수빅조선소에서 건조해 오는 2019년 인도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RG 발급이 미뤄지고 있다.

필리핀에서 조선소를 운영하는 만큼 한진중공업은 국내 뿐 아니라 필리핀 금융권에서도 RG를 발급받은 사례가 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필리핀 국책은행이 RG 발급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 금융권도 발급 기준을 더욱 강화하며 여신한도 축소에만 신경쓰고 있어 아직까지 RG가 발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처음부터 RG 발급에 2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VLCC에 대한 RG는 조만간 발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3월 중순 체결한 계약에 대한 RG 발급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조선소 입장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성동조선해양 역시 의향서(LOI, Letter of Intent)를 체결한 유조선 수주건에 대해 수출입은행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면서 RG 발급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 성동조선해양이 건조한 LR1(Long Range1)탱커 전경.ⓒ성동조선해양

성동조선은 지난달 중순 그리스 키클라데스(Kyklades Maritime Corporation)와 11만5000DWT급 유조선 5척에 대한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번 수주가 확정될 경우 성동조선은 오는 11월 첫 호선에 대한 강재절단(Steel Cutting)에 들어가 오는 2019년까지 선박 인도를 마무리하게 되며 동형선 2척에 대한 옵션계약이 포함돼 추가 수주도 기대되고 있다.

척당 선박가격은 4300만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옵션을 포함할 경우 총 계약금액은 3억달러를 웃돌게 된다.

특히 1년 6개월 이상 수주를 하지 못해 오는 10월 마지막 선박 인도를 끝으로 남은 일감이 없어지는 성동조선으로서는 이번 수주건이 절박한 상황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성동조선해양지회 관계자는 “이번에 의향서를 체결한 선박가격은 척당 4300만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4000만달러 미만인 중국이나 4000만~4100만달러 수준을 제시하는 국내 경쟁사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며 “지난 2014년 수에즈막스 유조선을 발주한 바 있는 선주가 성동조선의 기술력과 선박품질을 높이 평가함에 따라 이번 계약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수주건 외에도 석유제품선 시장에서 선사들과 협상에 나서고 있다"면서 "만약 수출입은행의 RG 발급 거부로 계약이 무산될 경우 현재 논의 중인 다른 계약건들도 줄줄이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이 수주를 추진하는 선박들의 선가가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RG 발급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성동조선의 계약이 저가수주는 아니지만 최근 선박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는 분위기여서 경쟁사 대비 높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도 힘들다”며 “아직 의향서 단계이기 때문에 RG 발급 여부는 본계약 체결 이후 수익성을 검토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박을 발주한 선사로서는 용선계약 등의 이유로 선박을 인도받아야 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으며 RG가 발급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과 일본, 국내 조선소들과 치열한 수주경쟁 끝에 선박을 수주한 조선소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RG이 늦어져 이를 기다리지 못한 선사가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경쟁사나 경쟁국으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금융권이 RG 발급을 미루는 이유로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한국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을 지휘했던 국책은행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책임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여신 확대를 거부하고 있으며 RG 발급 지연도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조선업종노조연대 정책협약식’에 참석한 윤호중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국책은행들에 대해 ‘적폐 중의 적폐’라며 새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시사한 것도 금융권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당시 윤 의장은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결과 현재 대부분의 중소 조선소들은 문을 닫거나 경영상황이 더욱 악화됐다”며 “조선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은행 고위 임원들이 퇴직 후 조선소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관행이 적폐를 더욱 키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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