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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하늘나라로 떠난 '두유의 아버지' 故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일제강점기 19살의 나이로 최연소 의사고시 합격
국내 유당불내증 치료 위해 콩우유 '베지밀' 개발
'정식품' 설립 후 50여년간 한국 두유 산업 이끌어

이소라 기자 (sora6095@ebn.co.kr)

등록 : 2017-10-11 11:51

▲ ⓒ정식품

#1.일제강점기, 어려운 가정형편에 보통학교(현재로는 초등학교에 해당)만 졸업 후 의학도들의 강의실을 청소하고, 실습 심부름을 하며 남은 종이로 공부를 하던 한 소년이 있었다. 몇 년 후 이 소년은 19살 나이로 최연소 의사고시 합격자라는 영광의 인물이 된다.

#2. 한 어머니가 맥없이 늘어진 아이를 업고 소년이 일하는 병원문을 들어섰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년은 방도가 없었다. 이유없이 설사와 구토를 하는 아이를 허망하게 떠나보낸 소년은 언젠간 이유를 찾겠다고 다짐한다.

#3. 소년은 어느덧 40세 중년에 접어들었다. 소아과를 운영하며 다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소년은 20년간 가슴에 묻어뒀던 아이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후 영국, 미국을 전전하던 소년은 '유당불내증'을 발견해냈고, 아이들을 살릴 '콩으로 만든 두유'를 치료제로 개발한다.

한편의 영화같은 기적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이 소년은 바로 지난 9일 별세한 故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이다. 향년 100세. 국내 최초로 두유를 개발해 건강함의 상징 '베지밀' 브랜드를 이끌어온 정 명예회장의 발자취는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故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정식품
정 명예회장은 1964년 아기들의 치유식 개발을 위해 콩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73년 지금의 정식품을 창업한 이후 약 50년 이상을 콩 연구에 몰두하며 국내 두유 산업 성장의 기틀을 닦았다.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정 명예회장은 홀어머니 아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어렵게 공부해 19세 나이로 최연소 의사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명동성모병원 소아과에서 의사 생활을 할 당시 원인 모를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은 계속 생겨났고, 시간이 흘러 죄책감과 사명감으로 사망 원인을 찾고자 44세에 유학을 결심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영국 런던 대학원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UC 메디컬 센터 등을 거치고 만 5년 간의 유학 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끝에 아기들의 사망 원인이 모유나 우유에 함유된 유당 성분을 정상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개발을 거듭한 끝에 1966년 정 명예회장은 유당이 없고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을 이용해 만든 선천성 유당불내증 치료식 두유를 개발해 식물성 밀크(Vegetable+Milk)라는 뜻의 '베지밀'을 탄생시켰다.

그 해 정 명예회장은 '베지밀'로 제 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했으며, 그 후 콩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고인은 국제적으로도 그 공로를 인정 받아 1999년 국제대두학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기업의 이윤추구 보다는 소비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제품의 개발과 공급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시장 1위 브랜드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OEM 전문회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 경쟁기업들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만든 두유를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주경야독'의 고된 시간을 걸어온 정 명예회장은 "누구든 공부에 대해 가슴앓이를 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했다. 정 명예회장은 지금까지 33년 간 약 2350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며 귀감이 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