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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금융살롱] 채용청탁 조차 없는 증권사의 애환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7-11-14 10:50

▲ ⓒEBN 경제부 김남희 기자
채용 비리와 청탁이 사회문제로 급부상하면서 금융권도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우리은행 채용 청탁을 계기로 금융권에 인사청탁에 대한 강력한 사정(司正) 태풍이 몰아닥쳤다.

채용비리에 얽힌 이들은 "(우리 자녀가) 은행에 입사할 수만 있다면, 연봉이 세고 복지 좋은 금융기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권력과 전문성을 지닌 금융당국 명함을 가질수만 있다면 얼마나 윤택한 인생을 살까"하는 생각으로 인사 청탁을 했을 것이다.

입사 청탁 논란의 중심엔 우리은행뿐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금융기관도 있다. 이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업종은 고달픈 영업과 양극화된 사양 산업으로 인식돼 있어서 그런지 채용청탁이 은행보다 덜할 겁니다. 글로벌 경제환경과 증권 시장에 사업 운명이 달렸다고 봐야하는데, 누가 자식들 고생시키려고 증권사에 밀어넣겠습니까"라고 했다. 청탁할 정도의 직장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이른바 '편하고 번듯하고 돈 많이 받는' 일터일 것이다.

실제 채용청탁은 은행권과 금융공기업, 국책은행 등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금융권이라 해도 회사와 업권마다 '고생의 수위'가 천양지차란 이유에서다.

증권업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렇다. 은행에 비해 하루하루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고,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면 일반 월급쟁이보다 못하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적지않다.

그래서일까. 증권사 입사를 부탁하는 외부인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유추된다. 5년간 증권사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는 한 CEO(최고경영자)는 임기 중 채용청탁을 받은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공시, 사업보고서, 언론에 따르면 은행원 평균 연봉은 1억원에 달한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9300만원으로 은행권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0년 정도 다니면 보통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 신입사원 연봉도 5000만원에서 시작한다. 다른 은행원들도 비슷한 수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한 언론에서 조사한 바로는 신한은행(4700만원), KB국민은행(4000만원) 우리은행(3900만원), KEB하나은행(3900만원), 산업은행(4635만원), 기업은행(4618만원), 한국은행(4479만원), 수출입은행(4341만원), 기술보증기금(4242만원), 신용보증기금(4216만원), 금융감독원(4171만원), 무역보험공사(3988만원), 예금보험공사(3977만원)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금융권 일터로 꼽힌다.

국내 직장인 10명중 4명은 월 2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오버랩된다. 단순노무 종사자에 국한된 숫자이긴 하지만 은행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일반 기업보다 질적으로 높은 생활이 시작된다고 간주된다.

증권사 신입사원 연봉은 은행권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은행권보다 큰 각오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시중은행은 개인고객 중심의 창구영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수익의 대부분은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다.

▲ 우리은행 특혜채용 의혹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채용 시스템에 대한 점검에 착수한데 이어 검찰까지 조사에 나섰다ⓒEBN
증권사 상황은 다르다. 글로벌 경제와 증권시장 상황에 의존하는 천수답형 사업이 기본 전제다. 디지털금융 기조 때문에 증권사 지점은 통폐합되어가면서 브로커리지(주식) 영업직원이 VIP시장쪽으로 정예화 돼가는 추세다. 단순 주식 판매에서 종합자산관리 차원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증권사에서 2년 이상 버틴 직원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부모님 재산이 많거나, 엄청난 능력(?)을 갖춘 인물이란 게 업계의 속설이다.

리서치나 자산운용 혹은 경영지원 부서도 사정은 좋지 않다. 분기별로 고객 자산 유치 캠페인 일환으로 영업할당이 부여된다. 최악의 경우 대출 받은 돈으로 실적을 메워 주가 하락으로 마이너스 신세가 된다. 증권맨 대부분은 계약직 신분이다. 계약에 따른 정확한 계산법으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산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고객들에게 은행앱을 깔아달라고 부탁해 이른바 ‘앱팔이’로 불리는 은행인의 영업 스트레스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증권맨처럼 기업현장을 발로 뛰는 직군은 별로 없다.

증권사는 스타트업·벤처·중소기업 및 대기업 라인을 꿰고 이들에 모험자본 공급으로 사업 활성화를 일으키는 일이다보니 태생적으로 리스크를 감내하는 분야다. 성과 없이 눈치만 보는 프리라이더(free-rider·무임승차)를 동반할 수가 없는 문화가 강력한 편이다. 청탁을 하는 입장도 치열한 증권사보다 안정적인 은행권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세간에서는 '평생직장'이란 말은 옛말이 됐고 이른바 '철밥통(철로 만들어서 튼튼하고 깨지지 않는 밥통)'에 대한 기대감도 무너진지 오래다.

하지만 멋지고 쉬운 일만 자기 차지이고, 치열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은 타인의 몫이라는 '특권의식의 시대'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채용비리 조사가 특권층의 이기주의와 나르시시즘, 해묵은 적폐를 깰 수 있을지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