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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구본무 회장 별세…'160조 글로벌 LG' 키운 '집념의 승부사'

  • 송고 2018.05.20 11:43 | 수정 2018.05.20 11:54
  • 최다현 기자 (chdh0729@ebn.co.kr)

2차전지·디스플레이·이동통신 과감한 투자 '초우량 기업' 결실

대기업 최초 지주회사체제 전환…마곡 R&D센터 '인재중심' 경영 의지 반영

LG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3세인 구본무(73) 회장이 20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LG

LG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3세인 구본무(73) 회장이 20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LG

LG 창업주 고(故) 구인회 회장의 3세인 구본무(73) 회장이 20일 오전 영면에 들었다.

구본무 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경영자로 평가 받는다. 1947년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에서 출발한 LG는 2세 경영(구자경 LG 명예회장)에서 한국 대표 대기업으로 구본무 회장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럭키금성을 글로벌 시장에 맞는 'LG'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도 구 회장의 의지였다.

LG그룹의 매출은 1995년 구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대에서 2017년 160조원대로 5배 이상 늘었다. 특히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구 회장은 '승부근성'이 강한 경영자로 유명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LG는 보수·안정적인 이미지였지만, 구 회장은 취임 직후 줄곧 '1등', '초우량 기업', '승부근성' 등을 강조하며 LG의 변화를 주도했다. 이같은 집념의 승부사 면모는 △부회장 시절부터 끈기 있게 개척한 이차 전지 사업 △단호한 결단으로 키운 OLED TV 등 디스플레이 사업 △통신 사업으로의 과감한 진출 등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그는 매년초 LG인화원에서 그룹 CEO 수십명이 참여하는 1박 2일 글로벌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왔다. 창업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초에도 구 회장은 "100년 이상 영속하려면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0억 적자에도…디스플레이·2차전지 사업 개척

1995년 LG CI 선포식을 가진 구자경 명예회장(왼쪽 세번째)과 구본무 회장(왼쪽 첫번째)이 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LG

1995년 LG CI 선포식을 가진 구자경 명예회장(왼쪽 세번째)과 구본무 회장(왼쪽 첫번째)이 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LG

구 회장의 과감한 투자는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으로 결실을 맺었다.

구 회장은 1998년 LCD 전문기업 'LG LCD'를 설립했다.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사업을 한 데 모으고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에 투자를 결정했다. 특히 1999년 8월 당시 국내 기업이 유치한 외국 자본으론 사상 최대 규모였던 16억달러를 필립스로부터 유치해 합작사 'LG필립스 LCD'를 출범시켰다. 2008년엔 단독법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켜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웠다.

2차 전지 역시 구 회장의 투자로 현재 LG의 핵심사업으로 성장했다. 1992년 부회장으로 그룹 사업 전반을 챙기던 구 회장은 영국 출장에서 처음 2차전지를 접하고 무릎을 쳤다. 한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후 반복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를 LG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은 것이다.

이에 구 회장의 지시로 럭키금속이 2차전지를 연구했고 회장 취임이후인 1996년엔 럭키금속의 연구팀이 LG화학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2005년에는 2차전지 사업이 2000억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구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길게 보고 투자와 연구개발에 더 집중하라",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며 다독였다. 현재 LG화학은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현대기아차·GM·포드·르노·아우디·상하이차 등 완성차 업체 30곳 이상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LG텔레콤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뒤 유선통신(데이콤·파워콤) 인수를 통해 통신을 LG의 주력 사업으로 키웠다. 2010년 통신3사를 합병한 LG유플러스 출범 이후, 구 회장은 과감한 투자로 4세대 이동통신 LTE 시장의 판을 뒤흔들었다. 구 회장은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하라"고 지시하고 3년으로 예상된 LTE 전국망 구축을 9개월만에 끝냈다.

◆'지주사 전환' LG웨이 확립…핵심사업 성장 발판

구본무 회장이 2015년 마곡 사이언스파크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LG

구본무 회장이 2015년 마곡 사이언스파크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LG

구 회장은 일찌감치 그룹 지배구조도 바꿨다.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다. 이는 IMF 이후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 회장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당시 국내 대기업집단이 순환·상호 출자 구조를 이용해 적은 자본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LG는 지주회사인 (주)LG와 자회사 간 수직적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만 전념하고, 지주사가 사업포트폴리오를 관리하도록 했다. 지주사 전환후 구 회장이 자회사 최고경영자들에게 당부한 것은 "더 적극적인 책임 경영" 이 한마디였다.

구본무 회장은 또 잇따른 계열분리로 LG그룹의 핵심 사업에 주력했다. 1999년 LIG 분리를 시작으로, 2003년 전선·제련·도시가스 사업을 LS로, 2005년엔 정유·유통·홈쇼핑 사업을 GS그룹으로 분리했다. 구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으로 그룹의 경영 패러다임을 바꾼 이후 2005년에는 경영이념 'LG웨이'를 발표해 '1등 LG'를 위한 기업문화를 선포했다.

특히 구 회장은 '영속기업 LG'의 해답은 R&D와 인재라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를 완성시키는 등 아낌없는 투자와 육성에 열과 성을 기울였다.

신성장동력 확보에도 적극적이었다. 구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위기이자 기회로 포착하고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해왔다.

구 회장은 "인공지능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혁신 기술은 우리에게 익숙한 경쟁의 양상과 게임의 룰을 전혀 새로운 형태로 바꾸고 있다"며 새로운 기술을 제조업에 적극 접목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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