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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척 바람' 담은 여의도 물고기거리, 흡연실로 전락한 까닭

공공미술·도심 휴식공간 성공사례 꼽혔던 증권거리, 흡연인 밀집지역 전락
"영등포구청이 조례 만들어 실외금연지역 지정해 흡연부스 운영해야" 비판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등록 : 2018-06-13 07:01

▲ 한화투자증권 사옥 앞에 설치된 '물고기상'. 이 작품은 여의도를 대표하는 조형물로 1995년도에 제작된 유리·골드모자이크 입체조형물 분수대다. ⓒEBN

한국 자본주의 상징인 여의도에는 증권사가 즐비한 ‘증권거리’가 있다. 여의도 명물 황소상 만큼이나 유명한 이 지역 입구에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물고기 조형물이 행인을 맞고 있다.
이 조형물에는 시민들에게 ‘월척에 대한 투자의 꿈’을 형상화한 것으로 금융 메카인 여의도에서 큰 수익을 낚으라는 바람이 담겼다. 증권거리는 여의도 직장인에게는 만남과 휴식 장소로,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되며 공공미술의 성공사례로 거론돼왔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현재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거리를 가득 채우며 행인들을 괴롭히고 있어서다. 한화투자증권을 비롯해 NH투자증권, KTB투자증권, 유화증권, 현대차투자증권 등 증권사가 즐비한 이 지역에는 점심 때와 휴식 시간 틈틈이 담배를 피우려는 직장이들이 모여든다. 담배연기로 가득 채워진 거리에 꽁초까지 뒹굴면서 지역 주민과 행인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참다못한 여의도 금융권에서는 영등포구청에 이 지역을 흡연 청정구역을 도입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최근 전달한 상태다. 구체적으로는 구청 측이 건물주에 흡연부스 별도 설치 등을 권고토록 제안했다.

하지만 영등포구청은 이 곳이 사유지인 까닭에 지자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일괄 단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의도 금융권 한 관계자는 “흡연은 공공의 건강에 반하는 행위”라면서 “행정당국은 흡연 부스를 마련하는 등 합리적인 관리·감독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물고기거리(증권거리)에 흡연자들이 모여있다. 행인이 지나가는데도 담배 연기를 내뿜는 흡연자가 대부분이다.ⓒEBN

여의도의 한 직장인은 “건물 내 금연이 강화된 시점인 2015년부터 이 거리의 흡연 열기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음식점 등 모든 영업소에서 전면 금연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 거리 빌딩의 한 관리자는 “건물주나 입주자들의 관리비로 공개공지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보니 담배 꽁초 청소 외에 흡연 단속 업무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물고기거리는 증권거리 초입에 들어선 물고기조형물(10m×5.7m×1.4m)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 조형물은 유리 모자이크 타일을 이용한 아름다운 물고기 형상으로 1995년 재불 작가 심현지 씨가 제작했다. 한화증권빌딩 앞에 놓인 이 예술작품은 영등포구청 혹은 한화그룹 측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상적인 건물 앞 조형물은 밋밋한 단색이다. 하지만 이 물고기는 무지개 빛깔의 비늘에 금빛 줄무늬까지 있는 화려함을 자랑한다. 한 미술평론가는 "동화 속 '무지개 물고기'와 흡사하며 살아서 파닥 거리는 듯 인상을 준다"면서 "삭막한 여의도 마천루 아래 금융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물고기거리는 청량제는 거리가 먼 흡연 지역으로 전락해 버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씁쓸함을 안겨주는 실세가 됐다.

행정당국에 따르면 현재 물고기 거리의 흡연에 대한 관리책임 주체가 모호한 상태다. 영등포구청은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에 따라 금연구역 지정이 가능하고 과태료 부과 등의 단속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영등포구청보건소 건강조사팀에서는 증권거리(물고기거리)가 사유지라는 측면에서 금연구역 지정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지자체가 '랜드마크'를 만들어보겠다며 공공 조형물을 설치해 거리를 조성한 만큼 구청이 주도적으로 본래 목적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열린 서울정원박람회에서 영등포구청은 여의도를 자치구 정원으로 삼고 소규모 쉼터인 휴(休)가든을 조성하기도 할 만큼 여의도 휴식 공간 마련에 관심이 크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여의도공원 등 사람이 몰리는 여의도의 많은 곳 대부분이 금연구역인데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는 행정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 물고기거리에 흡연인들이 늘어나자 이 거리의 유화증권빌딩은 금연구역임을 표시했다ⓒEBN

턱없이 부족한 흡연 구역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내 금연구역에 설치된 흡연 부스는 59개에 불과했다.

여의도 한 흡연인은 “흡연이 행인에게 피해 준다는 것은 알지만 담배 피울 곳이 없다”면서 “금연구역이 늘어났으면 흡연구역도 지정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자치구의 역할이 조례를 만들어 거리와 공원 등 실외 금연지역을 지정·운영하는 것인 만큼 흡연 부스 설치 또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화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등은 이 거리의 금연을 위해 흡연 부스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외 흡연부스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시설로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간접흡연 피해를 막기 위한 예산확충과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등 금연정책을 실행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금연지원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담뱃세는 11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10조5000억원, 2016년에는 12조4000억원을 담뱃세로 거둬들였다. 이 같은 담뱃세의 4분의 1 수준은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집행된다. 관련법은 국민건강관리사업에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증진기금 중 금연지원이나 흡연 피해 예방 위한 예산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건강증진기금 예산액(사회복지+보건)은 총 3조7342억원이며, 이중 금연사업에 지출된 금액은 1469억원으로 지출 총액 중 4% 수준에 불과했다.

여의도권 한 관계자는 “여의도 주요 랜드마크에 흡연 부스를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영화 쉬리 촬영지와 시민 휴식 장소로 쓰였던 물고기거리의 과거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의도 물고기거리가 러시아월드컵 거리응원전 장소로 쓰일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친화적인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의도에는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는 다양한 공공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다. 일제 강점기 비행장으로 쓰였던 여의도공원에는 C-47 수송기 조형물과 공군 창군 60주년 기념탑이 설치돼 있고 국회의사당 앞에는 ‘평화와 번영의 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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