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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STX조선 '밥줄' 쥐고 "줄까 말까"

RG 거부로 지난달 2800억 규모 수주 날려 "다음주에도 2척"
"건조자금부터 확보하라" 자산 매각 전까지 신규수주 힘들어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8-08-09 13:18

▲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전경.ⓒSTX조선해양

STX조선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선박수주에 필수적인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을 두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일감확보가 절실한 조선소 노동자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이미 지난달 2800억원 규모의 수주기회를 놓친 STX조선은 다음주까지 RG가 발급되지 않을 경우 수주를 확정한 2척에 대한 계약마저 취소될 수 있으나 산업은행 측은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STX조선해양은 그리스 선사인 오션골드(OceanGold)가 MR(Medium Range)탱커 2척에 대한 2차 옵션을 행사함에 따라 최종 계약만 남겨두고 있다. 이 계약은 조선소 측의 귀책사유로 선박 건조가 마무리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은행이 계약금(선수금)의 환급을 보증하는 RG가 발급되면 최종 확정된다.

지난해 말 선박 수주와 함께 체결한 옵션계약이 행사되는 것이므로 선박가격을 비롯한 계약조건은 첫 수주 선박과 동일하다. 또한 지난 5월 산업은행이 1차 옵션 2척에 대한 RG를 발급한 만큼 2차 옵션에 대한 RG 발급을 거부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KDB산업은행이 아직까지 RG 발급에 나서지 않으면서 계약 확정도 미뤄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조선업계가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은행들이 수주가격의 수익성을 문제삼아 RG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기 수주한 선박과 동일한 조건의 옵션계약에 대한 RG 발급을 거부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미 지난달 말 STX조선은 산업은행의 RG 발급 거부로 7척에 달하는 MR탱커 수주를 눈앞에서 놓친 바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5만1000DWT급 MR탱커의 시장가격은 척당 3530만달러(한화 약 395억원) 수준이다. 단순히 시장가격으로만 해도 2765억원에 달하는 일감을 RG 발급 거부로 날린 것이다.

현재 RG 발급을 기다리는 오션골드의 옵션계약도 다음주 중 발급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주가 취소된다. 선사 입장에서는 선박 발주 후 인도시기를 고려해 화물운송이나 용선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통상적으로 선사들이 건조계약 체결 후 RG 발급에 2개월의 유예기간을 인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은 이 계약건에 대해서도 2개월 가까이 RG 발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STX조선 노조 관계자는 “지난달 수주가 무산된 선박은 7척이지만 선사들이 선박 발주와 함께 옵션계약을 포함시키기 때문에 RG 발급만 이뤄졌더라면 10척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다”며 “아쉽지만 발주문의가 많아지는 만큼 앞으로 또다른 수주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RG 미발급으로 우리와 계약을 하지 못한 선사들이 현대미포조선과 새로 협상에 나선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중국 조선업계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도 높다”며 “MR탱커 건조를 위해 한국을 찾는 선사들이 협상을 할 수 있는 조선소는 이제 우리와 현대미포만 남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소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은 선박 수주뿐이고 STX조선이 선박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RG를 발급해줘야만 한다. 그러나 STX조선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산업은행은 지난달 최대 10척 이상의 일감확보가 무산됐음에도 RG 발급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 KDB산업은행 사옥 전경.ⓒEBN

산업은행 측은 STX조선이 수주하는 선박들의 수익성에 대한 의심과 함께 유동성 문제를 언급하며 RG 발급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MR탱커에 대해 현대미포는 3700만달러선에서 협상에 나서고 있으며 STX조선은 이보다 100만달러 적은 3600만달러 수준에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같은 중형조선소이나 글로벌 1위 조선그룹인 현대중공업그룹 조선계열사와 STX조선이 같은 선가로 경쟁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STX조선이 3600만달러 수준에 MR탱커를 수주한다고 하면 이는 지난 2016년 시장가격(3250만달러) 대비 350만달러 높아진 금액이다. 후판 등 원자재가격 변동추이에 따라 향후 수익성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으나 수주금액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산업은행은 STX조선이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수주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RG 발급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다음주까지 RG를 발급하지 않으면 2척의 선박에 대한 계약이 무산된다는 점은 우리도 알고 있으나 이들 선박을 수주한다고 해도 당장 들어오는 자금은 선가의 10%에 불과한 선수금 뿐인데 이 돈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유동성 문제로 RG 발급이 미뤄지는 것이고 현재로서는 발급을 검토 중이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그리고 STX조선이 선사 측에 제시한 선박가격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힘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STX조선에 더 이상의 자금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과 함께 고정비 감축 등 자구안 마련을 요구했으며 이에 대해 노조는 직원을 줄이는 대신 R&D센터, 플로팅 도크, 직원 숙소 등의 매각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목표로 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들 자산을 헐값에 처분할 수 없다보니 계획보다 매각일정이 지연되고 있으며 선박 건조 등 조선소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금 확보도 늦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장윤근 STX조선 대표는 사내 직원들에게 배포한 담화문에서 “수익성이 확보되고 자체 자금으로 건조할 수 있는 선박에 한해 채권단이 검토 후 RG 발급을 지원하는 것으로 약속받았다”며 “이는 2600억원 상당의 비영업자산 매각 등을 통해 조선소 운영자금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비영업자산 매각 차질로 현금흐름이 경색되고 신규계약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나 자산매각이 완료될 경우 향후 수주하는 선박에 대해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대표의 담화문에 따르면 유동성 없이 RG를 내줄 수 없다는 산업은행의 주장은 지난 4월 정부 컨설팅에서 결정된 사안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소의 ‘밥줄’을 이어주는 RG가 발급되려면 자산매각을 통해 선박 건조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러 척의 선박 수주와 건조가 반복되면서 조선소 운영자금이 순환하게 되는데 당장 일감이 부족한 조선소가 이와 같은 선순환구조의 유동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좋을 때는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선수금과 잔금을 새로 수주한 선박의 건조에 투입할 수 있었으며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안정적인 조선소 운영 기준으로 향후 2년치 일감 확보 여부를 꼽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수주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이와 같은 안정적인 조선소 운영은 힘들어진 상황”이라며 “더이상의 자금지원은 어렵다는 주장도 이해되긴 하나 경기 회복 시기 일감확보부터 이뤄져야 유동성이 확보되는 산업특성을 감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