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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종현 SK 회장 20주기…'핵심 산업' 일군 韓경제 선각자

  • 송고 2018.08.12 11:26 | 수정 2018.08.12 11:34
  • 권영석 기자 (yskwon@ebn.co.kr)

무자원 산유국, ICT∙반도체 강국 등 미래비전 모두 실현

오는 24일 워커힐서 열리는 20주기 행사에 각계 인사 500여명 참석

폐암수술을 받은 故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SK

폐암수술을 받은 故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SK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해냈다. 동시에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로 ICT 강국의 기반을 닦아 놓은 고(故)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오는 26일로 타계 20주기를 맞는다.

최종현 회장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원대한 꿈을 치밀한 준비(지성)와 실행력(패기)으로 현실로 만든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에게 ‘불가능’은 미래를 내다보고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은 사람의 핑계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 가난한 대한민국 청년들을 조건없이 유학보내는 등 평생을 인재양성에 힘썼다.

전경련 회장 시절인 1997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울 때도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경제 살리기를 호소했던 최종현 회장은 1998년 8월26일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최종현 회장은 화장(火葬)이 드물었던시절 화장 유언을 남겼고, 가족들이 이를 실천해 사후에도 큰 울림을 남겼다.

◆"운만으론 큰 사업 할 수 없다" 치밀한 준비로 꿈 실현

故최 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1973년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천명했다.

섬유회사에 불과한 SK가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한 것인데, 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꿈’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은 장기적 안목과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 치밀한 준비끝에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故최 회장은 1983년부터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성공확률이 5%에 불과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이 무자원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종현 회장은 미래설계가 그룹 총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운 이유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최종현 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앞선 준비 끝에 1992년 압도적 격차로 제2 이동통신 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자사업권을 자진반납했다.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내부를 설득한 최종현 회장은 실제로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주당 8만원 대이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하자주변에서 재고를 건의했지만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고 설득했다.

◆"인재 키워야 경제대국 발돋움" 일등국가 꿈꾼 재계리더

최종현 회장은 SK의 성장조차 불투명했던 1970년대부터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비록 대한민국이 아직은개발도상국이자 자원빈국 처지이지만 인재를키우면 얼마든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최종현 회장은 우선 1972년에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현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되던 시절,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최종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재단이다. 재단은 당시서울 집 한 채 값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재단이 44년간 양성한 인재는 국내외 곳곳에서 거목으로 자랐다.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으며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인 천명우(심리학과),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화학과) 등 세계적 석학이 된 이들은 학술교류와 민간외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종현 경영철학, 최태원에 고스란히 이어져

최종현 회장이 남긴 경영 DNA는 장남 최태원 회장에게고스란히 전해졌다. 최종현 회장이 항상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한 끝에 SK를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면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30년 전 최종현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1998년 취임할 당시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 원, 순이익 1000억 원, 재계 순위 5위였으나 현재는 매출 158조 원, 순이익 17조3500억 원, 재계 순위 3위로 성장했다. 또한 최종현 회장의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 발전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더 큰 행복을 키워나가고 있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20주기를 맞아 최종현 회장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고 있다.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트리플래닛에 전달, 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키로 했다. 오는 14일부터는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하고, 같은 달 24일에는 워커힐 호텔비스타홀에서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항수 SK그룹 홍보팀장(전무)은 "최종현 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후대 기업인이 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SK그룹은 앞으로도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존경받는 일등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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