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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리디노미네이션' 안할 이유가 없다

이윤형 기자 (y_bro_@ebn.co.kr)

등록 : 2019-04-26 15:59

▲ 이윤형 기자/EBN금융증권부 금융팀
화폐 단위를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한국은행의 국정감사나 업무보고 등 국회를 대면하는 자리면 단골로 나왔더 주제이기는 했다.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이 논의를 공론화시킬 계획을 세우면서 현재 진행형 이슈가 됐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는 그대로 두되 액면가를 낮추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1000원을 1원으로 혹은 10원으로 화폐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바꾸는 것이다.

해묵은 논의인 만큼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필요성과 부작용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반대 근거는 이념적 다툼까지를 담으면서 설득력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현 정부가 북한과 화폐 단위를 맞추기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황당하다 못해 참신하다 표현하고 싶다. 또 리디노미네이션은 2003~2004년 노무현 정부 때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며 논의에 불이 붙었다는 이유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리디노미네이션은 공산주의 국가나 하는 화폐개혁이다", "화패개혁은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데 대통령은 미리 집을 사뒀고, 긴급명령으로 이를 시행해 부동산 시세 차익을 먹을 것이다"라는 등 허무맹랑한 음모론마저 횡행하고 있다.

일반적인 반대 의견도 설득력을 잃고 있는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우수리 절상' 등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우려만 해도 그렇다. 예를 들어서 1000원을 1원으로 변경한다고 가정하면 종전에 900원이던 물건은 0.9원이 돼야하는데 가격표시 편의상 0.1원 올린 1원으로 정하게 되기 쉬우니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물가상승율이 매우 낮은 현재에는 되레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 가격표시 변경에 따른 상대적 가격하락 심리는 소비 진작 효과도 낼 수 있다. 경기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국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리디노미네이션이 특효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화폐단위가 갑자기 변경되면 국민 혼란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반대 이유로 제기된다. 하지만 뒷자리 0을 세 개나 네 개를 떼어낸다고 해서, 화폐 가치를 혼란스러워할 만큼 우리나라 시민들이 우둔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단순 편의를 위해 시행하기에는 손해가 크다는 주장도 그렇다. 이 같은 주장은 비용만 보고 편익은 생략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 2004년 진행한 리디노미네이션 비용·편익 연구에 따르면 당시 화폐만 교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3000억원 가량이었다. 금융결제시스템부터 전산시스템·ATM·자동판매기·주유기·발권기·간판·메뉴판 등등 전체 비용은 당시 돈으로 2조6700억원이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정확하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적어도 5조원에서 1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비용인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편익이 이를 뛰어 넘는다. 이 연구에 따르면 당시 한은은 원화를 1000대 1의 비율로 절하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경우 자기앞수표 발행 및 관리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다. 절감할 수 있는 금액이 8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비용(2조6700억원) 대비 3배에 달한다.

아울러 한은은 각종 금융거래는 물론 일상생활에서 계산과 지급, 기계와 소프트웨어 교체 등으로 생기는 일자리 창출과 소비 진작 등 부대 효과로 '5조원의 편익'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앞선 것과 같이 단순 계산으로도 10조원에서 20조원 가까운 금액이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 얘기다.

마지막으로 반대 의견 중에는 리디노미네이션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인 지하경제 양성화가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내용도 있다.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에 10%도 안 되는 수준이고, 시중에 풀린 돈 중에 한국은행으로 환수되지 않은 돈 중 불법자금은 전체 규모에 비해서도 작다는 게 근거다.

과연 그럴까.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지난 2015년 기준 124조7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7%에 달하는 수준이다. 124조가 작은 규모라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불법자금이 늘어나면서 지하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통화 유통을 괴사시키고 국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영향을 가져온다. 하지만 화폐 단위 변경으로, 음지에 숨어있던 화폐를 양지로 끌어 올려서 '지하경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리디노미네이션은 '해야 할 이유'가 된다.

이렇게 하나둘 따지고 보면 리디노미네이션은 '안'해야할 이유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적어도 해야할 이유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는 많다. 섣불리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안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비용보다 편익이 높다면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