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 "퇴직하기 싫으면 프로그래밍 공부"

  • 송고 2019.11.18 12:24
  • 수정 2019.11.18 16:17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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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업무 확대되며 영업직 비중 줄어들고 IT 전문인력은 영입경쟁

디지털전환은 기업 생존의 문제…'공대생' 전환은 개인 생존의 문제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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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계에 디지털전환이 생존의 문제로 부각되면서 대부분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후 입사했던 임직원들의 IT 관련 역량강화도 요구되고 있다.

영업직의 자리가 줄어드는 반면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IT부문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일자리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고 있으나 전형적인 '문과생'이 블록체인을 다루는 '공대생'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만큼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왔던 영업직원들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금융환경 변화와 금융업 일자리 대응방향' 자료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 금융업계 취업자는 83.1만명으로 2015년말(87.2만명) 대비 4.1만명 감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은행업계 취업자는 13.8만명에서 12.4만명으로 1.4만명 줄어들었으며 보험설계사(42.3만명)는 1.5만명, 카드모집인(1.3만명)은 0.9만명 감소했다.

올해 9월 기준 금융업계 취업자는 80.9만명으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금융당국은 IT 발달과 비대면거래 증가 등이 취업자 감소세 지속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015년말 7445개였던 은행업계 점포수는 지난해말 6953개로 줄었으며 같은 기간 보험업계 점포수도 6959개에서 6170개로 급감하며 6000개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은행의 직접 고용인원(10.1만명) 중 영업부문 인력(70.6%)은 여전히 70%대를 점유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경영효율화 등으로 영업·경영지원 인력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비대면거래 증가 등으로 IT부문 인력은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일자리구조가 변화하면서 이에 적응하기 위한 은행업계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한 은행은 디지털 역량강화를 위해 대학교에 디지털금융공학 석사과정을 개설·운영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영업점 직원은 디지털관련 부서로 발령됐다. 전통적으로 대학에서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후 은행에 입사한 직원들이 프로그래밍 등 컴퓨터공학을 공부해 블록체인 등 디지털 분야 업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디지털 비전 선포식'과 함께 데이터 기반 정보기업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하나금융그룹은 1년이 지난 올해 10월부터 모든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코딩교육을 시작했다.

첫 단계로 기초 코딩 프로그램을 통해 논리적 사고와 컴퓨터를 활용한 문제해결 능력 제고를 추진하는 하나금융은 그룹 임원 및 본부 부서장을 대상으로 실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제작 툴인 'Justinmind' 프로그램을 활용한 디지털교육도 병행한다.

모든 계열사 임직원의 코딩교육 실시에 대해 한준성 하나금융 부사장은 "디지털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며 디지털역량은 IT부문 직원만이 아닌 전 금융인의 기본역량이자 나의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전환이 '생존의 문제'로 인식됨에 따라 경영·경제학을 전공한 '문과생'들은 이제 컴퓨터공학에 매진하는 '공대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금융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특히 비대면거래 활성화로 고객들이 은행업무의 90% 이상을 모바일 등 인터넷에서 처리함에 따라 은행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영업점 축소에 나서고 있으며 지난달 말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오픈뱅킹이 본격적으로 은행간 경계를 허물게 되면 은행의 성장을 주도해 온 영업직원들의 설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업직의 감소와 함께 IT분야 전문인력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퇴직시기를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해서는 IT 관련 소양을 키우는데 전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일시에 IT 숙련인력 구인에 나서면서 채용목표를 채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1주일 내외 입문과정이 대부분인 금융회사의 외부 IT 연수 프로그램은 금융과의 관련성도 떨어지고 빅데이터 등 핵심과정은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대생'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만큼 IT 관련 업무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향을 찾아볼 수는 있다.

금융업계는 신남방정책을 앞세워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아 나서고 있으며 신용회복위원회는 금융업계 퇴직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서민금융 종합상담역'을 채용하고 있다.

15년 이상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만 55세 이상 경력자를 채용하는 '서민금융 종합상담역'은 과중채무자 금융상담, 채무조정 전 단계의 종합신용상담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올해 채용인원은 30명으로 지난해(7명) 대비 크게 늘렸다.

상호금융권에서도 건전성 제고, 사고 예방 등을 위해 금융회사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를 채용해 취약부문 현장점검과 내부통제 지도업무를 맡기고 있으며 현재 136명이 컨설팅역으로 근무 중이다.

금융당국은 향후 채무조정 서비스업 등이 도입될 경우 금융권 은퇴자의 경험·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줄어드는 일자리에 비해 은행을 떠나면 갈 수 있는 곳은 상당히 제한적인 수준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업계가 동남아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대부분 현지인력을 채용해 운영하다보니 국내 고용을 늘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지 않다"며 "상담역이나 금융관련 선생님에 대한 수요도 있지만 제공되는 자리가 매우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형적인 '문과생'이 프로그래밍 등 '공대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금융업계에서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앞으로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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