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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돈풀기' 한국판 양적완화 '엇갈린 해석'

  • 입력 2020.03.31 14:01 | 수정 2020.03.31 14:42
  • 이윤형 기자 (y_bro_@ebn.co.kr)

"유동성 공급에 신용경색 안전판 마련" vs "지분 부채화 효과에 그칠 것"

단기금리 통한 유동성 조절도 가능해…회사채 직접 매입 여부는 불투명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지난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한국은행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가 지난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방안 실시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시행하면서 '한국판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경제 충격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은 상황에서 한은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다만,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시장에 전례 없는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신용경색에 대한 안전판이 마련됐다는 평가지만, 유동성 공급 기간이 단기간인 만큼 일부 금융기관의 지분이 부채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도 나온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 금통위는 다음 달부터 3개월 동안 매주 정례 RP 매입을 통해 시장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한다. 오는 4월2일 첫 입찰을 시작으로 주 1회 '기준금리+10bp(1bp=0.01%포인트)' 상한(0.85%)의 일정금리 수준 하에서 한도 없이 RP매입 (91일 만기)을 실시한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때조차 쓰지 않았던 조치로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로 해석된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엄중하다"며 "시장 수요 전액을 공급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양적완화'라고 봐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단 전례 없는 안정 조치로 유동성 우려로 급등했던 채권 금리는 다소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안정세로 돌아선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무제한 RP매입이 발표된 지난 27일 국고채 3년물은 장중 3.4bp 내린 1.033%에 거래됐었고, 국고채 10년물도 직전날보다 3.9bp 내린 1.463%에 거래되기도 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 효과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지만 정책당국의 시장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감안하면 신용 경색에 대응한 안전판은 마련됐다"며 "정책당국의 안정 조치가 효력을 발휘할 경우 시장의 초점은 경제지표로 선회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경제가 침체되거나 악화되는 경제지표의 발표는 시장금리의 하락과 커브 플레트닝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P매입으로 훼손됐던 매수 심리가 회복됐고, 변동성도 진정됐다는 평가도 따른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6일을 기점으로 채권금리의 하락 신호가 발생해 향후 금리 변동성 축소와 더불어 채권금리의 하향 압력을 높일 것"이라며 "4월 국내 채권금리는 불안요인 상존에도 불구하고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같은 효과는 일시적이며, 결과적으로는 기업과 개인의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반대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은의 실시한 무제한 RP 매입을 금융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기축통화국의 양적완화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실시하고 있는 양적완화와 한은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 조치는 차이가 있다.

연준의 경우 채권을 단순매입하고, 만기도 다양하게 한다. 최소 1년 이상의 장기채를 매입해야, 경제주체들이 당분간 유동성 걱정 없이 경제활동을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은은 RP(91일물) 매입이라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연장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일단 3개월 동안 만이다. 매매대상이 되는 증권을 담보로 받고, 환매 전까지 자산을 현금화해주는 성격이 더 크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적완화같이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는 분명 있지만, 3개월 후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효과의 폭이나 지속 기간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금리정책을 통한 단기금리 조정으로 시장 유동성 조절 여력에 대한 차이도 지적된다. 실제, 미 연준은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이후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단기금리를 조절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장기채권을 직접 매입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목적이다.

장기금리가 떨어지면 이와 연동된 은행 여수신 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이 하락하면서 경제주체들의 금융 비용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반면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0.75%고, 한은은 금리정책 여력도 아직 남아있다는 입장이다. 자본유출 가능성이나 통화정책 효과 등을 감안해 내릴 수 있는 하한선인 실효하한을 감안해도 추가 금리인하 여력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단기금리를 통한 시장 유동성 조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에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형 양적완화'는 위기상황에 대중의 뇌리에 꽂힐 수 있는 단순 명료한 키워드로 안성맞춤"이라며 "결과적으로 정책 여력을 소진해가며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어지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적으로 무제한 공급할 수 있다는 '신호(signal)'를 줌으로써 신용위축 위험을 막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문 연구원은 이어 "한은의 3개월 RP 매입을 무제한 양적완화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 무제한도 아니고, 양적완화(QE)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추후 한은이 선진국형 QE와 유사한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윤 부총재는 '영리기업에 대한 여신' 제공을 규정한 한은법 80조에 대해 "해당 조항을 발동시킬 상황인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조항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등을 매입하기 위해 최종 대부자로서 자금을 공급하는 근거조항인 연준법 13조3항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회사채 직접 매입 여부는 불투명하다. 한은법상 한은의 민간 발행 채권 매입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윤 부총재는 "회사채를 정부가 보증해 나간다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결정하는 데에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은이 회사채와 CP 등을 직접 사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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