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핀테크사 회계부정' 다룬 여신협, 빅테크 견제(?)

  • 송고 2020.08.04 15:52
  • 수정 2020.08.04 15:58
  • EBN 강승혁 기자 (kang0623@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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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당국, 와이어카드 의혹에 면죄부 주다 19억 유로 회계부정…국민 피해

국내 금융당국, 핀테크 육성정책 일변도 지적…"리스크 관리능력 요구해야"

와이어카드 본사 전경ⓒ연합

와이어카드 본사 전경ⓒ연합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여신금융협회가 '의제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핀테크사의 연체·부실 등 리스크관리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육성·보호정책으로 일관해 균형감을 잃으면 대형 금융사고의 발생 가능성도 뒤따라 온다는 경고를 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여신금융협회 산하 여신금융연구소는 최근 '독일 핀테크업체 와이어카드(Wirecard)의 회계부정 사건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냈다.


와이어카드는 1999년 독일에서 설립돼 유럽뿐 아니라 중동,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에 걸쳐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한 핀테크업체로서 2005년 상장 이후 총자산이 58배 가량 급성장했다. 2002년 마르쿠스 브라운(Markus Braun)이 CEO로 취임한 이래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으나, 언론 및 주주협회 등에 의해 재무상태에 대한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2019년 와이어카드가 가공거래를 통해 허위매출을 발생시켜왔다는 싱가포르 지사의 내부고발이 공개되면서 의혹이 실체화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올해 6월 재무제표상 19억 유로(약 2.7조원)의 현금이 존재하지 않음이 밝혀지면서 회계부정이 사실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와이어카드의 회계부정에 대한 증거가 계속해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회계법인이었던 EY는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 투자 전문가들 또한 와이어카드에 대해 매수 의견을 유지하는 등 대응에 한계를 드러냈다.


심지어 내부고발이 보도된 2019년에도 와이어카드는 소프트뱅크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무디스(Moody's)의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한 채권을 발행하는 등 사업 확장과 자금조달을 아무 문제없이 수행했다.


독일 금융당국 또한 경영진 측의 발표만을 믿고 와이어카드의 의혹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독일 금융감독청(BaFin)은 FT의 보도를 비롯한 의혹제기를 주가조작 시도로 받아들였으며, 2019년 당시에도 FT측을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하는 한편 와이어카드 주식의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하는 등 자국기업에 대한 방어적 태도로 일관했다.


독일 핀테크사 와이어카드의 흥망성쇠는 국내 금융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6일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종합지급결제사업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간편결제업체에 최대 30만원까지 후불결제 기능을 허용하고, 선불 충전한도를 최대 500만원으로 늘린다. 사실상 이자와 같은 리워드나 포인트도 지급할 수 있다.


업체당 최대 월 30만원 한도이기 때문에 2곳만 이용해도 1인당 신용카드 평균 사용금액(60만원)을 무리없이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핀테크사의 주고객층은 경제활동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청년층이어서 연체부실 우려 확대를 간과할 수 없다. 카드사들은 이를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하는데, 핀테크사가 어느 수준으로 대손충당금을 쌓아야할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급여 이체, 카드 대금·보험료·공과금 납부 등 계좌 기반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를 위한 특혜로 여겨지고 있다. 은행이나 카드사가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될 수 있는지는 결정된 바 없다. 이외에도 카드업계는 핀테크사에 비해 자본금 조건, 수수료·마케팅 규제 등 규제편차에 따른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핀테크사에도 '동일산업-동일규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게 여신금융협회 입장이다. 보고서를 낸 장명현 연구원은 "와이어카드의 회계부정은 내부통제, 회계법인의 외부 감사,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이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였던 사건"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핀테크업체 또한 대형은행 및 기존 금융회사 수준의 리스크 관리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압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최근 영국 금융감독청(FCA)는 지급결제 및 전자화폐업체가 고객자금을 안전계좌 하에서 명확하게 분리해 관리하도록 조치하고, 소비자보호 관련 주요 사항을 명시한 최신 규제지침을 발표했다.


그간 협회의 적극성을 기대해왔던 카드업계는 여신금융연구소의 이번 보고서 발표에 크게 호응하고 있다. '관치금융'으로 불릴 만큼 금융당국의 그립이 센 카드업계 상황을 고려해 보고서 형태를 빌어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사실 현 정부 들어서 핀테크, 빅테크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키워주기 정책'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며 "그러나 금융업의 특성상 신뢰나 위기관리능력 등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적정수준의 규제나 관리가 꼭 필수불가결하다는 논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신금융연구소가 그간 시의적절한 보고서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며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빅테크나 핀테크가 정보유출이나 분식회계, 파산 등의 큰 이슈는 아직 없었는데 현재 마냥 이대로 가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인식해 이를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듯 보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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