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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잘못된 코딩항을 찾아서

  • 송고 2022.10.26 15:42 | 수정 2022.10.27 16:22
  • EBN 관리자 (rhea5sun@ebn.co.kr)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EBN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EBN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를 경계로 누르는 외력과 견디려는 내력 간의 투쟁에 대해 생각한다. 건축학에서 건물의 기초와 기본 뼈대가 되는 재료이자 외형을 ‘부재(部材)’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물리적 실체를 가진 구조물이다. 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부재이자 구조물은 인간 그 자체, 바로 ‘나’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외력에 짓눌리지 않고 버텨야 존재한다.


구조물을 둘러싼 외력과 내력 간의 투쟁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드라마로 꼽는 ‘나의 아저씨’를 통해 알려졌다. 주인공 박동훈(이선균)은 구조물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설계하는 건축구조기술사다. 우연한 기회로 사무실 계약직 직원 이지안(아이유)이 청각장애 할머니를 부양하면서 밤낮 없이 사채업자의 돈을 갚는 고단한 상황임을 알게 된 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라는 위로를 건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했듯이, 위로하는 자는 위로받는 자보다 훨씬 더 깊은 고통과 슬픔으로 차 있기에 적절한 위로의 말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외부 압력보다 내부의 힘이 조금만 더 세면 된다는 말은 박동훈 스스로가 자신에게 매일같이 수십, 수백 번씩 해주었을 위로였을 것이다.


건물의 내력이 외부의 바람, 하중, 진동보다 강해야 버틸 수 있는 건축학의 원리는 생물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포벽을 사이에 두고 발생하는 안팎의 삼투 현상이 그렇다. 세포 내부의 농도가 외부보다 낮아지는 순간, 중국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흡성대법에 당한 것처럼 세포 안 수분이 외부로 쪽 빨려 쪼그라든다. 세포벽 외부보다 세포벽 안의 농도가 높아야만 세포는 형체를 유지할 수 있다. 대단할 것 없이 보이는 보통의 삶을 사는 이들 모두가 외력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생기를 쪽쪽 빨리지 않기 위해서, 매일 온몸으로 버티며 생존한다.


1999년에 만들어진 영화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는 소프트웨어회사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이자 암흑세계 해커 네오로 살고 있는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에게 “우리를 움직이는 건 질문”이라고 말했다. 고도로 발달된 AI가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발전기 삼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현실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는 네오가 인간들을 진짜 현실로 이끌어줄 구원자임을 확인받기 위해 오라클이라는 선지자이자 안내자에게 데려간다. 오라클은 네오가 인류를 구원한 ‘그’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아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서, 온몸으로 ‘나’를 알게 되는 시점이 온다는 선문답을 한다.


그리곤 정답은 어딘가에 있으며 네가 정답을 찾듯이 정답 역시 너를 찾아가고 있다는 말을 한다. 트리니티와 오라클이 네오에게 한 말들의 총체는 질문이 정확해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요컨대 질문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답도 찾을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블록체인 세상에도 오라클이 있다. 블록체인 세상의 오라클은 블록체인 밖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옮겨오는 정보의 입력자이자 중간자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A라는 조건을 충족하면, B를 실행한다”는 스마트 콘트랙트를 통해 누군가의 자의적 개입 없이 실시간 자동실행이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지만, 실행만 자동화되어 있을 뿐 실행의 전제 조건이 제대로 달성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이것이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맹점이다. 조건문의 입력은 오로지 오라클에게 달려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는 오라클이 입력한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하지 못한 채 오로지 조건문에 대한 실행만 수행한다.


이런 모순은 인간의 삶에게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외로우면 짝을 찾아 결혼한다”는 조건-실행문이 있다고 치자. 이 문장은 “외로우면 짝을 찾는다”는 첫 번째 조건문과 실행문, “짝을 찾으면 결혼한다”는 두 번째 조건문과 실행문을 가진 삼단논법으로 구성돼 있다. 그 결과 “외로우면 결혼을 한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결혼하기 위해서는 먼저 외로워야 한다. 나의 외로움은 내가 나에게 전달하는 데이터 값이다. 내가 내 인생의 오라클이 되어 정보를 입력해주는 셈이다. 외롭다고 느꼈다면 외롭다는 조건은 성립했으니, 이제 스마트 콘트랙트에 의해 짝을 찾는 실행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짝을 찾는다고 다 찾아지는 건 아니다. 이건 끝끝내 완료되지 않을 수 있다. 끝없이 실행이 지연되는 것을 펜딩(pending)이라고 한다. 펜딩상태가 지속되다가 실패(fail)로 끝날 수 있다. 스마트 콘트랙트 실행 실패다.


마침내 짝을 찾았다면 이제 “짝을 찾으면 결혼한다”로 넘어가자.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짝은 찾았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할 수 있다. 운 좋게 결혼까지 도달했다면 이제 모든 실행문은 완료되었다. 외로워서 짝을 찾았고, 짝을 찾아서 결혼했다. 스마트 콘트랙트 실행 성공! 이제 실행 완료된 블록체인 트랜잭션은 네트워크에 기록돼 위변조 불가 상태가 된다. 인간사에서 이런 기록은 보통 결혼식과 혼인신고서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외로워서 결혼했는데, 외로움에 고단함이 더해지는 결과값이 나온다. 아니 이게 뭐야? 뭔가 처음부터 잘못 짜놓은 조건-실행의 프로그램 아닌가. 당초 외로움의 해결책이 “짝을 찾아 결혼한다”가 아니라, “재미있는 만화를 본 뒤 잠을 잔다”나 “치킨을 배달시킨 뒤 영화를 본다”가 더 적절한 실행문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실제로 스마트 콘트랙트가 구동하기 전까지 제대로 실행문을 짰는지를 미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험 많은 개발자가 가장 중요하다. 많이 실패해본 사람이 오류의 가능성도 줄인다.


또 다른 문제는 애초에 오라클이 입력해준 데이터가 틀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시적인 심심함을 외로움으로 착각했거나, 권태로움과 여유를 외로움으로 인지했을 수 있다. 아니면 운동부족이나 수면부족으로 인한 호르몬 이상이었을 수도 있다. “커플지옥, 솔로천국”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삶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다시 영화 ‘매트릭스’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오라클은 인도자일 뿐 문을 여는 것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오라클의 인도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선택한 자가 자신이 직접 연 문으로 나간 뒤 그 길을 정답으로 만드는 과정이 요구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면서 행했던 수많은 선택들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 블록체인처럼 비가역적이다. 그저 선택한 뒤 그것을 답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무엇이 어디서 잘못 입력되었는지 파악하지 못해도 인생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멈추지 않고 트랜잭션을 계속 발생시키고, 어떤 트랜잭션들은 끝내 내 삶의 이력에 추가되지 못한 채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불연속과 불합리와 비가역의 순간들을 포함해서 내 삶의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간다.


잘못된 코딩항은 모든 전산 프로그램에 존재한다. 디지털 프로그램 안에서도 존재하고 물리세계에도 존재한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존재한다. 그런 순간엔 작동을 멈추지 말고 잘못된 코딩항을 찾아야 한다. 정확한 질문을 하고 정상적인 답을 찾자. 당신을 누르는 그 모든 외력과 삼투를 견디면서, 멈추지 말고 일단은 작동하자. 작동이 답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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