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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욕의 서사

  • 송고 2023.02.20 06:00 | 수정 2023.02.20 18:37
  • EBN 관리자 (gddjrh2@naver.com)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EBN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EBN

욕은 거칠고 상스럽지만 사회적 가치의 대척점에 놓인 금기와 혐오를 가장 효과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부적절한 성적(性的) 교합이나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 욕설이 압도적으로 많다. 성(性)은 인간생활의 가장 일상적이고 본능적인 욕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욕이기도 하다.


직접적이고 즉물적이지만 너무나 빈번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다보니 오히려 욕을 하는 자도 욕을 듣는 자도 원래의 의미는 거의 자각하지 못한 채 분노와 경멸의 감탄사나 접두사, 혹은 강조의 부사처럼 주고받는다.


이에 비해 같은 욕이라 하더라도 신체 기능과 지능, 외모를 비하하는 욕설은 상대방의 취약점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공격수단이 된다. 객관적으로 인지되는 물리적 열세를 대상화한 욕은 성적인 욕설보다 훨씬 더 큰 타격감을 주기 때문에 듣는 이가 가볍게 듣고 웃어넘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가까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넘치는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 성적 욕설을 섞어 쓸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신체와 지능에 대한 욕을 내뱉는 순간 분위기는 짜게 식으면서 곧 날선 언쟁과 주먹다짐이 오가는 것도 이 같은 특징에 연원한다.


또 다른 범주의 욕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짐승이나 해충의 행태와 생존방식을 빗대 누군가의 ‘인간답지 못함’을 지적할 때 사용된다. 이런 욕은 보통 상대의 인간적 가치와 품위, 행실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담고 있으며, 공동체의 일반화된 품평이 되어 당사자의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로 언어가 다른 해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의역이 아닌 직역으로도 완벽하게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바로 욕설이 등장할 때다. 그런 점에서 욕은 인류가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도 인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언어적 지표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욕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문화적 수용성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세탁과 세신을 자주 할 수 없던 시절에는 이나 벼룩, 빈대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시로 남에게 공(空)으로 빌붙는 행태를 비난할 때 “빈대 붙는다”고 욕을 했다.


비슷한 용례로 애용되는“거머리 같은 인간”이라는 표현도 논농사의 생활사적 체험이 녹아있다. 봄철 맨다리를 내놓고 물 댄 논에서 모내기를 하다보면 거머리 몇 마리쯤 붙어있기 마련인데, 논에서 나온 뒤에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피를 빠는 거머리를 떼어내기란 시각적 징그러움과 함께 촉각적 물컹함이 맞물려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빈대와 거머리를 접하기란 이미 어려운 일이 되어 이런 욕들은 구체적인 체험은 빠진 채 언어의 화석처럼 용태(容態)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이런 비 일상적인 욕은 상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적 발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욕은 욕하는 자의 감정과 좌절감, 분노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집단과 대상을 특징지어 비하하고 차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며,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시키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어 왔다. 인종과 직업, 민족을 비칭(卑稱)하는 말이 시대와 사회의 족적처럼 욕으로 사용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대가 바뀌고 형식적으로 나마 사회 문화적인 평등성이 보편적인 가치 기준으로 수용되면서 ‘식별의 언어’가 ‘차별의 언어’로 악용되지 않도록 과거에는 욕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인종, 민족, 지역, 직업에 관련된 다수의 용어들도 현 시점에선 욕으로 분류되고 있다.


욕은 주고받는 쌍방 모두의 내면을 황폐하게 하고 인격적 품위를 손상시키는 부작용이 있지만 적어도 사회적 통찰과 인간다움의 지향점을 가장 압축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류문명의 서사(narrative)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시대상황 역시 욕의 서사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작년 12월 1일 마이크로소프트가 10억 달러를 투자한 OpenAI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를 공개한 후 출시 두 달 만에 월 사용자가 1억 명을 넘어섰다. 시장도 이에 부응하여 국내외 대부분의 기업들과 투자사들이 모두 챗GPT와 유사한 AI 기술을 개발 중이라거나 투자할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OpenAI에 100억 달러의 추가 투자와 파트너십 체결을 발표했다.


아직까지 전 세계 수십만 장의 웹페이지 내 텍스트를 데이터화해서 질문에 나온 단어를 기준으로 기존 문장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챗GPT의 등장은 수많은 공상과학 영화들이 그려내었던 암울한 미래사회와 자의식을 가진 슈퍼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고 부품으로 취급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챗GPT에 “인간다움이 부족한 인간을 ‘챗GPT만도 못하다’고 욕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챗GPT의 답변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경험하거나 가치를 유지할 수 없는 언어 모델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표현할 수 없다”는 정중한 양해의 첫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형성하는 힘이 있으며 어떤 집단의 사람이든 그를 향해 경멸적인 언어사용은 차별과 편견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잖은 충고의 말들을 한참 더했다. 그리고는 말미에 다시 한 번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언설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인도주의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렇다. 챗GPT의 답변을 근거로 적어도 아직까지는 인간만이 욕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오로지 인간만이 창의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힐난하고 경멸하는 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간답지 못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욕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부터 ‘인간다움’을 표하는 새로운 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인간이 ‘인간다움’의 기준으로 남길 수 있는 최후의 조건문이 욕밖에 없다면, 인간이 기계보다 낫다고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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