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자세한 상황은 유인물로 대체할 것을 건의합니다"
"제청합니다" 짝짝짝~
한 해의 실적을 평가받는 주주총회가 초등학교 미화부장을 뽑는 회의보다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지난해 회사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어도, 타 법인과의 인수·합병으로 이슈가 있었음에도, 주가가 반토막이 나도 주총 자리에서 이를 자세하게 설명해줄 생각이 애초에 없어 보인다.
회사를 대표하는 의장도 유인물 앞에 적힌 인사말을 담담하게 읽어나갈 뿐이다. 새로운 내용도 아니고, 한 달 전, 1년 전부터 보도자료에 줄기차게 적어나갔던 내용이다. 비단 특정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슈퍼주총데이'라고 떠들썩하게 불리지만 실상 대부분의 주주총회가 이런 식이다.
힘들게 발언권을 얻은 한 주주가 반토막 난 주식의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의장은 "다른 주주들의 발언권을 위해 짧게 해달라"며 질문을 잘라버린다. 뒤이어 발언권을 얻은 이 회사의 직원으로 보이는 한 직원은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안건을 표결에 붙일 것을 건의합니다"라고 하자 또 다시 주변에서 "제청합니다"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 회사의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는 해외사업장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왜 없었겠냐마는 싸늘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더 이상 발언을 요청했다가는 오히려 면박을 당할 분위기다. 진행요원들도 다른 발언자가 있는지를 찾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2015년을 보낸 한 회사의 주주총회는 마치 순항을 해왔던 것처럼 30여분만에 끝이 났다. 전날 회사에서 건네준 질문지를 들고 "제청합니다"를 열심히 연습했던 동원된 직원들은 오늘도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회의장을 빠져나온다.
요즘은 주주총회가 많이 열린다. 특히 금요일만 되면 주주총회가 러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요일을 슈퍼주총데이라고 부른다. 이번 주 금요일에도 슈퍼주총데이가 예고된 상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 언제쯤 초등학교를 졸업할까? 이젠 더이상 3학년 1반 주주총회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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