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식의 이행저행] 서울 규제, 지방 규제

  • 송고 2019.04.08 10:00
  • 수정 2019.04.08 09:49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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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EBN

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EBN

"직접 근처 부동산에 가서 한 번 알아보세요. 서울에나 10억 넘는 아파트가 있지 이 동네는 3억 넘는 아파트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요."

얼마 전 찾아간 거제시에서 기자를 만난 한 소상공인은 서울을 기준으로 한 대출 규제가 전국에 적용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조선산업이 침체되면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 경기도 급격히 침체됐고 이는 부동산시장에 적나라하게 반영되고 있다.

3년 전 2억5000만원이던 한 아파트 시세는 1억5000만원까지 내려갔고 어떤 아파트는 보증금 4000만원에 전세 매물로 나왔다. 원룸을 찾는다면 월세 10만원~20만원 수준에 깔끔한 방을 구할 수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거제를 기반으로 하는 소상공인들의 고충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자동차·조선 협력업체들의 지원을 강화하면서 이들 중소기업은 만기연장, 대출금리 인하 등의 혜택과 운영자금 충당을 위한 대출까지 알아볼 여지가 넓어졌으나 소상공인들이 은행 문턱을 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보증기관 관계자는 "이 지역 시중은행 영업점에서는 소상공인이 대출을 위해 방문하면 바로 보증기관으로 안내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며 "정부가 마련하는 특별자금도 접근성 좋은 수도권을 위주로 먼저 소진되기 때문에 뒤늦게 보증기관이나 거제에 한 곳 뿐인 기업은행 지점을 찾아왔다가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소상공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회식자리가 줄어들면서 저녁에 주차할 곳을 찾아헤메는 모습도 사라진 지역에서 당장 돈이 급해진 소상공인들에게 대출문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기준 강화로 소득이 없으면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은행권을 넘어 제2금융권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직원들 월급은 아직 안밀리고 있지만 내 월급을 집에 가져가본 기억은 오래 됐다"는 한 소상공인은 "은행 대출도 안되고 집을 담보로 한 대출도 안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상반기 중 DSR 규제를 제2금융권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방침 아래 오는 10일 '가계부채 관리 점검회의'를 개최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 금융권 가계대출·개인사업자대출 동향 파악과 함께 보험, 상호금융,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등 제2금융권 DSR 시범운용 현황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5%선에서 억제한다는 방침을 정한 만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고 이는 제2금융권에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 지역 소상공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제2금융권 DSR 규제가 시행되면 만기 환급금을 담보로 보험사에서 대출을 받는 보험계약대출도 주담대처럼 제한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담대가 주택이라는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처럼 보험계약대출 역시 환급금이라는 자산을 담보로 대출받는 것이기 때문에 DSR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논의 중이나 상반기 중 적용을 추진한다는 방침인 만큼 조만간 규제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로 힘들어지는 기업이 많아질수록 금융의 역할과 중요성은 커지게 되며 이에 따른 금융권의 부담과 리스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조선업 침체 이후 해당지역 시중은행들의 대출과 부실채권은 전반적으로 늘어났으며 각 시중은행에서는 대출문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한 조선소 협력업체 사장이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모 은행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정한 업종별 신용도가 농업이나 수산업보다 낮아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는 말을 농담처럼 툭 내뱉는 한 소상공인의 말은 이와 같은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기 때문에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말이 안될 것이다. 하지만 서울 및 수도권을 표적으로 한 대출규제 강화가 지방에까지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거제에서 만난 한 소상공인의 주장이다.

이 소상공인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씁쓸한 미소만 지어보였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지만,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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