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기관 대비 선가 높지만 연료비 8분의 1 수준 불과
![김영식 KRISO 친환경연료추진센터장2[출처=KRISO]](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278_666011_62.jpg)
"선박에 전기추진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선사들의 탈탄소와 운영비 절감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 북유럽 전기추진 여객선의 경우 기존 화석연료 추진 선박 대비 운영비를 75% 이상 절감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김영식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 친환경연료추진센터장은 탄소감축과 연료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친환경선박의 미래는 전기추진 방식으로 귀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규제가 점차 강화되면서 글로벌 선사들은 다양한 연료와 추진방식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2010년대 LNG가 차세대 선박연료로 주목받은데 이어 2020년대 들어서는 메탄올, 암모니아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한 추진시스템 개발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와 같은 친환경 연료는 기존 화석연료 대비 가격이 비싸고 낮은 에너지밀도로 인해 더 큰 연료탱크를 필요로 한다. 지난해 LNG가 다시 선사들의 주목을 받은 이유다.
탄소 배출이 적거나 아예 없는 연료로 전환이 어렵다면 남은 선택지는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조선사들은 같은 양의 연료로 더 먼 거리를 운항할 수 있는 연비향상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이를 바탕으로 수주 영업에 나서고 있다. 선박의 크기와 속도, 날씨, 파도 등에 따라 달라지긴 하나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및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은 하루에 70톤 내외의 연료를 사용하며 17만4000㎥급 LNG선은 약 100톤, 2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150톤 이상을 사용한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선박도 전기를 이용해 운항할 수 있다면 운영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상선을 전기만으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거대한 배터리가 필요하므로 아직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전기차의 경우 100kWh 정도의 배터리가 탑재된다는 걸 감안하면 1톤 트럭 18만대분의 화물을 운송하는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에 탑재돼야 하는 배터리의 규모는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형 상선에서는 아직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지만 소형선, 특히 가까운 근해를 왕복하는 여객선에는 전기추진 시스템 탑재와 실증이 이뤄지고 있다.
노르웨이는 지난 2015년 세계 최초의 전기추진 차도선(MF Ampere) 운항을 시작한데 이어 23노트의 속도로 운항할 수 있는 고속 페리선(MS Medstraum), 양식장 관리선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 기업인 야라 버클랜드(Yara Birkeland)는 120TEU급 컨테이너선에 전기추진과 함께 자율운항 시스템을 탑재해 2021년 시험운영에 나섰는데 이 또한 세계 최초의 기록이다.
핀란드는 2017년부터 'Electra'호를 운영 중이고 EU의 E-ferry 프로젝트에 따라 덴마크 남부의 애뢰(Ærø)섬과 알스(Als)섬 사이를 왕복하는 'Ellen'호의 운항거리는 50해리(93km)로 현존 최장거리 기록을 갖고 있다.
![전기추진 차도선 [출처=KRISO]](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278_666012_710.jpg)
국내 최초 전기추진 차도선 경쟁력 입증…사업화 추진 중
우리나라에서도 KRISO가 전기추진 차도선을 개발해 시험운항을 진행 중이다. 길이 60m, 폭 13m에 420톤 규모인 이 선박은 120명의 승객이 탑승하고 20여대의 차량을 실을 수 있다. 지난 2022년 진수한 이 선박은 2023년 5월부터 현재까지 40회 이상 실해역 운항에 나서며 검증과정을 거쳤다.
김영식 센터장은 "일정이 없어도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일부러 운항하면서 모든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보기도 했다"며 "디젤엔진의 경우 소음이 심해 귀마개 없이 기관실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전기추진 차도선은 그런 소음은 물론 진동도 크게 줄어 승객의 편의성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KRISO는 전남 목포에서 전기추진 차도선을 개발하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충전방식을 고안해냈다. 선박에 탑재된 배터리를 육지에서 바로 충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을 통해 배터리를 교체하는 방식을 적용했는데 이는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하고 여름철 잦은 태풍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노르웨이의 경우 잔잔한 내해를 운항하기 때문에 항만에 충전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나 우리나라 서해안은 해수면 높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선박이 일정한 위치에 접안하는 것이 어렵다. KRISO가 개발한 전기추진 차도선은 선박 내에 두 개의 배터리가 장착돼 있으며 접안하면 두 대의 이동·교체식 전원공급 시스템 전용차량이 선박으로 이동해 전원을 공급한다. 전용차량은 선박에 장착된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직접 전원을 공급해 운항할 수도 있다. 만약의 경우 장착된 배터리 중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한 곳의 배터리 또는 전용차량의 전원을 이용해 항만으로 이동하면 된다.
시험운항을 거쳐 전기추진 차도선의 경쟁력도 입증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선박을 운영하면서 소요되는 비용일 것이다. 최대 30km를 운항할 수 있는 이 선박은 약 16만원의 전기료가 소요된다. 기존 디젤 엔진 차도선의 연료비가 130만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운영비는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엔진을 비롯한 기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유지보수가 용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는 압해도 등 목포항 인근의 섬들을 운항하는 것에 불과하나 배터리 기술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운항 가능 거리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덴마크에서 운항 중인 'Ellen'호는 4.3MWh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1.6MWh를 사용해 41km를 운항한다. 산술적으로 1회 충전에 최대 약 110km를 운항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율운항 기술의 고도화로 최적항로를 설정하고 배터리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수년 내 목포에서 제주까지 약 170km를 운항하는 전기추진 선박의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 센터장은 "2030년에는 제주와 목포를 연결하는 여객선의 전기추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며 "기술발전에 따라 안전성과 에너지밀도 향상이 이뤄진다면 2040년에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선박들도 전기추진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KRISO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추진 차도선의 사업화를 위해 국내 여객선사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며, 높은 선가로 인한 선사의 부담을 경감시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차도선을 건조한 공동연구개발기관 및 민간 여객선사에서 사업화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
충전 인프라와 관련 기준 마련해야 "전기차와 같은 정부 지원 필수"
선사 입장에서는 친환경과 비용효율성 측면에서 전기추진 차도선이 갖는 매력도 분명하나 국내 최초로 이를 운영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충전 인프라 구축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1MWh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대용량 충전설비와 전용차량이 구비돼야 하는데 이를 선사가 전부 투자하는 것은 초기비용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전기추진 선박이 대중화되면 이에 따라 민간 충전 사업자도 늘어나겠지만 현재까지는 KRISO가 개발한 단 한 척에 불과하므로 전기차와 같이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김영식 센터장은 "선박을 충전할 수 있는 고전력 인프라 가설 및 구축은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되는 작업이고 충전방식 및 설비 표준화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시장 활성화에 정부·지자체의 보조금 지원이 큰 역할을 했듯이 전기추진 선박 활성화를 위한 보조금 및 금융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현재 해양수산부가 친환경 선박 건조에 최대 30%를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업의 활성화와 재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