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온다"…터널 속 정유·화학업계 볕들까

권영석 기자
  • 입력 2024.12.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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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산업 화석 연료 생산 늘리고…친환경 정책 약화 기조 예상"
친환경 투자 부담 축소…국내 정유업계 우호적 영업환경 제공 관측

47대 미국 대통령에 도날드 트럼프가 당선됐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트럼프노믹스 2탄'이 다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 역시 긴장감 속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집권 당시 중국에 막대한 관세 폭탄을 부과, 무역전쟁을 본격화한 바 있다.

지난 선거 유세 과정에서 더욱 강력한 관세 전쟁을 예고했던 그다. 중국뿐 아니라 동맹국을 상대로도 무역협정 재협상을 요구하며 무역수지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행보 역시 앞으로 분주해지게 된 셈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 국익을 위해서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특히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재집권 확정으로 국내 정유사들과 석유화학업계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지옥(?)…석유화학 '웰컴 트럼프' 미소

트럼프 노믹스의 귀환으로 한국 산업계가 긴장과 우려에 휩싸였지만, 조용히 웃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석유화학산업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동안 공공연하게 탈탄소와 그린 뉴딜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기후 위기를 "역사상 최악의 사기"라고 치부하며,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책에 반대해 왔으며, 화석 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의 규제 완화와 활성화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도 트럼프 집권 2기에 대한 기대감이 감돌고 있다. 트럼프는 1기 때와 같이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국제 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후보 시절 여러 번 연방 토지 내 시추 허가 확대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중국발(發) 설비 증설 속 공급과잉 탓에 좀처럼 침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탈탄소 기조에 수요가 줄고 있는 데다, 국제 유가의 변동으로 정제마진(원유와 원유로 만든 제품 간 가격 차이)이 감소해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4대 석유화학 기업으로 꼽히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3개 기업은 올해 3분기 일제히 적자를 냈으며, 그나마 흑자를 낸 금호석유화학 또한 전년동기 대비 영업익이 22.7% 급감했다. 다만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트럼프의 친 화석연료 기조에 석유화학제품 공급망의 안정성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석유와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활성화를 강조해 왔다. 여기에 유가 하락, 중국의 경기 부양책에 힘입은 수요 진작 등 긍정적인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삼정KPMG의 '트럼프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체제 내 에너지 산업은 화석 연료 생산을 늘리고, 파리 기후협약 재탈퇴 등 친환경 정책을 약화하는 방향이 예상된다.

보고서는 "글로벌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 증가로 원유와 가스 가격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며 "기후변화 대응 기조 완화로 한국 기업의 ESG 관련 부담은 축소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나프타 등을 활용한 석유제품의 원가 경쟁력 확보도 수월해질 전망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산 화학제품의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나프타 무세화 유지 등 국내 기업의 생산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다소 복잡한 심경일 것"이라며 "일면에서는 국제적인 탈탄소 움직임과 맞서야 하는 도전적인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방침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변동성이 큰 시기에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며 "트럼프 노믹스의 재등장이 가져올 긍정적인 면과 동시에 장기적인 도전 과제까지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릴 베이비 드릴"…정유업계, 실적반등 급선무

국내 정유업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전통 에너지로의 회귀'를 강조해온 만큼, 업계 수익성 개선이 기대되는 한편 불확실성을 감안한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게 업계 공통적 분위기다.

트럼프 당선인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로 대표되는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는 반대 방향의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집권이 정유업계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유세 당시 “화석연료와 석유산업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면서 재집권에 성공하면 파리기후협정에서 재탈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처럼 기후변화 대응에는 소극적인 반면 전통 화석연료 부흥을 위한 정책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점쳐진다.

법무법인 지평은 최근 ‘트럼프 당선이 한국 경제 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국 내 오일 생산 확대, 석유 업체에 대한 규제 및 세금 완화, 연방 토지 내 시추 허가 확대 등 화석연료 에너지 기반의 에너지 산업 지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제 유가 하향 안정화 예상 된다”며 “친환경 투자 부담 축소가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우호적 영업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가 원유 증산에 들어가면 유가가 하락해 국내 정유사들은 일시적으로 재고평가손실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제마진이 상승해 수익선이 개선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국신용평가는 "연료유 중심의 석유 제품 수요가 장기화하면 한국의 정유산업은 안정화된다"며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이 감소하고 현금 흐름이 개선되며 국내 정유사들의 재무 부담도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시추·생산 관련 규제 완화로 최근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의 심해탐사 움직임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트럼프의 ‘친석유’ 정책이 국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유업계 실적 반등의 요소가 단순히 유가 하나로만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변수들이 많아서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실적 반등을 위해서는 원유 가격도 중요하지만 정제마진 상황도 지켜봐야 한다. 아직 판단하기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한편 국내 정유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GS칼텍스)는 올해 3분기 정유부문에서 합계 1조953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 중 가장 큰 616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5737억원, GS칼텍스 5002억원, HD현대오일뱅크의 정유부문 적자도 2634억원으로 집계됐다.

국제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감소가 실적 악화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국제유가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3분기 소폭 상승한 이후 중국의 원유 수요 감소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부각되며 대폭 하락했다.

또 다른 산업계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은 한국 에너지 산업에 단기간 내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글로벌 경제 및 환경 변화 속에서 장기 비전과 전략도 동시에 고민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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