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 활황…2월 발행량 10조 돌파 전망

건설사들이 올해 초 회사채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오랜 부동산 경기 둔화와 금리 상승으로 건설채는 그동안 비선호 채권으로 꼽혀왔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한 현대건설은 물론,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건설채까지 잇따라 흥행을 기록 중이다. 시장은 전통적인 ‘연초효과’와 2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투자 심리를 개선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시장 분위기에 기댄 것이 아니라, 각 건설사가 신용도와 재무구조를 고려한 맞춤형 발행 전략을 펼친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2월 국내 회사채 시장은 1월의 활황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탄핵 정국과 미국의 관세 이슈 등 불확실성이 있었지만, 2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이를 상쇄하며 공급이 크게 늘었다. 2월(23일 기준)회사채 발행은 첫째주 1조 7000억원, 둘째주 1조 5910억원, 셋째주 6조 5420억원으로 총 9조 833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모두 2조원 대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2월 한달 새 3~4배에 달하는 물량이 쏟아졌다 할 수 있다. 넷째주(24일~28일) 발행 물량까지 고려할 경우 2월 전체 발행 물량은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요도 넘쳤다. 기관 투자자들은 등급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기업들이 쏟아내는 회사채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6일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최대 총 8000억원 모집에 3조74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연합자산관리는 2500억원 모집에 3조600억원을,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는 당초 목표로 했던 1500억원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3배에 달하는 약 2조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1월에 이어 2월도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던 셈이다.
실제 기업 자금 조달 환경을 반영하는 크레딧 스프레드도 가파르게 축소되고 있다. 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 3년물과 국고채 3년물의 금리 차이를 나타내는 크레딧 스프레드는 일반적으로 기업 신용 안정성이 높아지거나 크레딧 채권의 투자 매력도가 커질 때 줄어든다. 지난해 12월 69.0bp에 달했던 크레딧 스프레드는 21일 기준 59.7bp까지 낮아졌다.
건설채, ‘귀한 몸’으로 급부상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서 건설사 회사채 역시 없어서 못파는 '귀한 몸'이 됐다. 건설업계 최고의 우량 등급이지만, 지난해 23년 만의 적자를 낸 현대건설은 물론이고 A등급 이하 비우량 건설채 역시 회사채 수요예측서 연신 완판 행렬을 기록 중이다. 흥행의 포문을 연 건 HL D&I 한라다. HL D&I 한라는 BBB+의 비우량 등급에 막혀 지난해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서 '무응찰'이라는 굴욕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올해는 주문액이 모집액을 뛰어넘는 '오버부킹'을 기록, 최종 발행 금액을 존 710억원에서 810억원으로 증액했다. 지난11일 SK에코플랜트도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988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으며 3000억원 증액 발행에 성공했다. 업계의 상환 전망을 깨고 회사채 발행에 나선 현대건설 역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발행 직전 1조원에 달하는 연간 적자를 공개하면서 수요예측 흥행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업계 최고 신용도’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유효했다. 총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무려 1조50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몰리며, 10배가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건설 사옥 전경 [출처=현대건설]](https://cdn.ebn.co.kr/news/photo/202502/1653270_665994_1450.jpg)
승부 가른 ‘맞춤형 발행 전략’
건설채 시장의 활황을 두고 업계는 단순한 연초효과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때문이 아니라, 각 건설사들이 신용도와 재무 구조를 고려한 맞춤형 발행 전략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단 금리전략이 좋았다. HL D&I 한라와 SK에코플랜트는 수요예측서 희망금리 밴드 상단을 크게 여는 고금리 전략으로 투심을 유인했다. HL D&I 한라는 1년물 6.8~7.8%, 1.5년물 7.1~8.1% 까지 제시했고, SK에코플랜트 역시 희망금리 밴드 상단을 개별민평금리 대비 최대 1.5%포인트까지 높였다. 조달비용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두 회사는 우선 수요를 모으는데 집중했다. 이같은 전략은 기관들의 경쟁적 매수세를 부추기면서 완판은 물론 증액 발행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또한 한껏 올려잡은 희망금리에도 불구, 주문이 밴드 하단부터 상단까지 골고루 들어차며 적절한 금리 안에서 발행금리가 확정됐다. SK에코플랜트만 해도 발행금리가 연 4.089%~4.656%으로 결정되며 차환해야 하는 종전 회사채의 발행 금리 연 5.36~6.13% 보다 낮아지면서 이자비용을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현대건설은 희망금리를 예년과 유사한 개별 민평 평가금리 대비 -30bp~+30bp 범위에서 제시했다. 다만, 수요예측 실패 가능성에 대비해 주관사단을 8곳이나 구성하며 철저한 사전 준비에 나섰다. 이번 현대건설 회사채 주관사에는 NH투자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키움증권, 하나증권 등이 참여했다. 이는 유례없는 조(兆) 단위 손실과 연초 우량 회사채가 대거 몰리는 시장 환경을 고려한 ‘빗장수비’ 전략으로 해석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연결 기준 1조2209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며 23년 만에 적자 전환한 바 있다. 수요예측에서 비교적 낮은 금리에 수요가 몰리며 현대건설은 증액 발행에 이어 언더금리 발행까지 점쳐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개별 기업의 신용도와 시장 상황을 고려한 발행 전략을 펼치면서 수요예측 단계부터 성공적인 흐름을 보였다”며 “이 같은 전략적 접근이 건설채 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3월에도 건설채 강세 지속될까?
그러나 건설채를 포함한 회사채 시장의 활황세가 3월에도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일반적으로 3월은 주주총회 일정 확정과 전년도 결산을 기반으로 한 재무제표 확정 작업이 이뤄지는 시기로, ‘회사채 시장의 비수기’로 여겨진다. 1월과 2월의 활황을 이끌었던 연초 효과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데다, 미국의 트럼프발(發) 관세 정책이 구체화되면서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2월 회사채 시장에서는 미국 관세 타격을 받는 업종 위주로 수요예측이 흥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발행 금리가 개별 민간채권평가사(민평) 평가 금리보다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오버 금리’ 발행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기관들이 점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건설채 시장 역시 수요 감소로 인한 발행 위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초 효과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라는 호재가 사라지면, 건설채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의 민낯이 다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는 “연초 효과와 금리 인하 기대감이 건설채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이러한 요인이 사라지면 투자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부동산 경기 둔화와 PF 리스크가 재부각될 경우, 건설채에 대한 시장의 신중한 태도가 다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