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효과에 쏟아지는 회사채...건설사는 '남의 일'

이승연 기자
  • 입력 2025.02.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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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북오프닝과 금리인하 기대감에 1월 발행 시장 강세

정치적 불안정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1월 국내 회사채 시장은 모처럼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예상치 못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기관들이 자금 집행을 재개하는 '연초효과'와 1분기 내 금리 인하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발행 시장이 강세를 띄었다.

하지만 건설사들에겐 그저 남의 일이었다. 신동아건설의 갑작스런 법정관리행(行)으로, 건설업계는 연초부터 자금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이어 올해 신동아건설 법정관리로 '건설사 부도 포비아'가 다시 재현된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시장성 조달에 나선 HL D&I한라의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이 건설사 자금 조달에 호재로 작용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월(19일 기준) 회사채 발행은 셋째주(13일~17일)부터 시작됐다. 첫째주(1일~3일)와 둘째주(6일~10일)까지 기업들의 공모채 발행은 없었다. 다만 셋째주 한 주에만 총 2조 740억원치가 발행되며 지난해 12월, 한달 발행 물량인 2조 5296억원과 맞먹는 물량을 단번에 쏟아냈다. 탄핵정국,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정치·경제 모든 부문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됐지만, 연초 기관투자가들이 출자 한도를 새로 설정하는 북 오프닝(Book Opening)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자금 조달 전략을 공격적으로 취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채권 업계는 연초 채권 발행 시장 강세의 원인으로 기준금리 점진적 인하 가능성을 꼽았다. 지난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인하 예상을 깨고 연 3% 동결을 결정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2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표면금리가 높은 회사채를 매수하면 만기까지 보유하든, 차액을 노리든 유효한 투자 자산이 될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기대되면서 신용 스프레드 역시 점차 축소세를 보이고 있다.

17일 기준 3년 만기 신용등급 ‘AA-’급 회사채와 3년 만기 국고채의 채권 시가평가 수익률 차이는 64bp였다. 비상계엄 전후 59.2bp였던 신용 스프레드(회사채와 국고채의 금리 격차)는 국내 정치 및 경제 불확실성 여파로 지난해 말 68.4bp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새해에 들어서부터는 완연한 축소세에 접어 들었다.

신용 스프레드가 축소된다는 것은 회사채 시장에 자금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올해 첫 회사채 발행 주자인 포스코는 이달 6일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5000억원 모집에 3조 4650억원의 주문을 모으는 흥행 대기록을 쌓았다. 이후 기업들의 회사채 수요예측 오버부킹은 계속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G유플러스, LG화학 등은 수요예측에서 모두 모집액을 넘는 조 단위의 수요를 모았고, 이는 증액 발행으로 이어졌다.

신동아건설 법정관리 불구, 비우량 건설채 HL D&I한라 오버부킹

이같은 흐름은 비단 신용등급 AA급 이상의 우량 등급 기업이 아닌, 비우량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두산(BBB+·BBB0·신용등급 스플릿) 지난 14일 총 400억원 규모의 공모채 발행에 324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한진(BBB+·안정적)은 600억원 자금 모집에 1110억원의 수요를 모으며 '오버부킹'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같은 호황은 채권시장에서 비선호 업종으로 분류된 건설사들에게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건설채는 지난한 부동산 경기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수년간 투자자들로부터 외면 받아왔다. 신용등급이 높은 건설사의 경우 미매각 사례는 드물었지만, 비우량 건설사들은 탄탄한 담보를 걸어 회사채를 발행해도 투자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여기에 연초부터 터진 신동아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은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여력을 더욱 버겁게 만들었다는 평가다.

신동아건설은 시공능력평가 '58위'의 중견 건설사로, 올해 초 60억원 규모의 어음 상환에 실패하면서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다행히 회사채 발행이 전무하고, 금융권 익스포져 역시 1200억원 규모에 불과해 시장에 대한 파급 효과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난해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이어 1년 만에 신동아건설 법정관리로 건설사 유동성 리스크가 재부각 되면서 올해 역시 건설채에 대한 투심은 더욱 얼어붙을 거라는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비우량 HL D&I한라의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은 건설업계 자금난의 단비가 됐다. HL D&I한라는 지난 16일 71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1560억원의 주문을 받았다. BBB+등급의 비우량 건설채라는 열위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투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HL D&I한라는 최종 발행액을 810억원으로, 100억원 증액 발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성공적 리파이낸스로 조달 금리도 종전 8.5%에서 7%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연초효과 기댄 일시적 호재 불과, 건설사 채권 ‘옥석가리기’ 심화 전망

다만 HL D&I한라의 사례는 ‘연초효과’에 기댄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확률이 높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HL D&I한라는 지난해 2월과 6월 각각 700억원, 600억원 규모의 공모채를 발행했었다. 그러나 2월 발행의 경우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단 1건의 주문도 확보하지 못했고, 6월에도 600억원 모집 수요예측에서 40억원의 미매각 물량이 발생했다. 1월 연초효과가 끝나자 기관들이 옥석가리기에 나서며, 안정적인 업종 위주로 선별 투자에 나선 결과다.

업계는 올해 또한 연초효과가 마무리되는 2월 중후반부터 발행 시장이 다시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변수이기는 하나, 연초효과가 끝나면 다시 회사채 수요 양극화가 시작되면서 건설채에 대한 투심은 현 수준에서 많이 꺾이게 될 거란 분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국내 회사채 시장은 금리 인하 전 채권 매수 수요가 크게 나타난다”며 “작년 말 대규모 채권 자금 유출에 반사효과까지 더해져 연초 자금 유입 규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준금리인하 시점이 예상되는 2월 중후반까지는 회사채 발행 강세가 예상되지만, 대규모 국채 발행과 추경 가능성이 현실화 되면 회사채를 담는 기관이 줄어 건설채에 대한 옥석가리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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