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 다 갔다"… 홈플러스 법정관리가 쏘아올린 건설사 자금난

이승연 기자
  • 입력 2025.04.01 02:00
  • 수정 2025.04.0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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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맞은 3월 회사채 시장...발행량 전월비 1조 '뚝'

[출처= EBN AI 그래픽]
[출처= EBN AI 그래픽]

연초 역대급 발행량을 기록하며 활기를 띠던 회사채 시장이 3월 들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금리 변동성과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 크레딧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는 연이은 법정관리 신청과 미분양 증가, 자금 조달 어려움 등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는 분위기다.

3월(21일 기준) 국내 회사채 발행량은 8조 5830억원으로 2월 발행 물량이 9조 8330억원을 크게 밑돌았다. 둘째주(1~14일)까지 3~4조원에 달했던 회사채 물량은 셋째주 9310억원 급감했다. 넷째주(24~28일) 추가 물량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저조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3월 전체 발행 물량은 10조원을 넘기기 어려울 전망이다.

통상 크레딧 시장은 3월을 기점으로 변곡점을 맞는다.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 및 실적 발표 시즌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인 탓에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감안해 높은 금리를 요구하며, 이에 따라 크레딧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지난 2월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으로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서 크레딧 스프레드가 상대적으로 더 확대되는 영향을 주고 있다.

국채 금리가 내려가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회사채 투자 매력이 낮아지고, 이에 따라 회사채 시장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기에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신청이 크레딧 시장에 새로운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대형 유통업체로서 비교적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나, 높은 부채 부담과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 리스크가 업황 부진 업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홈플러스 사태가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건설, 석유화학 등 업황이 부진한 업종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환경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홈플러스 법정관리發, 건설사 신용 리스크 확산 우려

건설업계는 연초부터 이어지는 중견 건설사들의 잇딴 법정관리 신청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들어 신동아건설, 대저건설, 삼부토건, 삼정기업, 안강건설, 대우조선해양건설, 벽산엔지니어링 등 다수의 건설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기존에는 지방 중소건설사를 중심으로 법정관리 신청이 이어졌지만, 올해부터는 수도권 중견 건설사들도 법정관리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건설업계의 유동성 위기가 점차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이런 가운데 홈플러스 사태로 저신용 회사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건설사들의 자금난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신용등급 BBB급 이하의 두산건설, 동부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주로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발행되는 채권이지만, 홈플러스 사태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저신용 기업 회사채를 외면하면서 발행은 줄고 유통 금리가 상승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회사채 신용등급 기준 BBB+ 등급 바로 위 단계인 A-등급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A- 등급에는 신세계건설 등이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의 자금난이 PF(Project Financing,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 조달 어려움과 맞물려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기명 연구원은 "주주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독 기업과 계열사의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업 간의 자금 압박 대응 능력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단독기업의 경우 회사채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계열사 지원 아래 유동화증권(ABCP) 매입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롯데건설, 이마트가 완전자회사로 편입한 신세계건설, 계열사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재무안정성 개선효과가 기대되는 SK에코플랜트 등 계열기업간에는 대처역량 차이가 있다"면서도 "시장 경계감은 건설업종 내 단독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건설사·부동산펀드·리츠까지 직격탄 불가피

홈플러스 법정관리 신청은 홈플러스 점포를 매입 후 임대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사와 부동산펀드, 리츠(REITs) 관련 신용부채(크레딧)에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리츠 시장에서 홈플러스 관련 부동산 자산은 유징PSG자산운용의 유징공모부동산투자신탁제3호,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코리아리테일부동산투자신탁 제126호, 코람코자산운용의 코람코한국밸류사모부동산투자신탁 제63호 등이 있다. 리츠 운용사 중에는 KB부동산신탁, 신한리츠운용, 대한토지신탁 등이 홈플러스 관련 자산을 운용 중이다. 시행사와 건설사 가운데는 지메이코리아, 디마세, DL이앤씨, MDM그룹 등이 홈플러스 점포를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홈플러스가 보유한 126개 점포 중 약 절반은 메리츠금융그룹으로부터 1조3000억원 한도의 차입과 관련해 신탁 방식으로 담보 제공됐고, 나머지는 주로 매각 후 임차계약(세일 앤 리스백)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홈플러스 점포를 매입해 임대 수익을 얻고 있는 부동산펀드와 리츠의 경우,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하락 요인이 추가돼 보유 점포 매각을 통한 청산 시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선 국내 부동산 개발업계 1위 회사인 MDM그룹과 DL그룹의 피해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먼저 MDM그룹은 홈플러스 가양·시흥·일산·계산·원천·안산점 등 10개 점포를 가지고 있다. 2021년, MDM은 이 점포들을 코람코자산신탁의 리츠(코크렙NPS제2호)에서 7900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현재 홈플러스와 맺은 임대 계약은 앞으로 11년이 남아 있다. 원래 MDM의 계획은 홈플러스가 운영되는 동안 임대료를 받으면서 수익을 올리고, 계약이 끝나면 그 부지를 주거단지 같은 걸로 개발해 더 큰 이익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이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법정관리 절차가 시작되면 공익채권(필수 비용)과 상거래채권(거래 관련 채권) 외에는 점포 임대료 지급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홈플러스가 임대료를 못 내면 MDM도 돈을 받지 못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결국 홈플러스가 점포를 계속 운영할지, 임대료를 어떻게 정리할지에 따라 MDM의 손실 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다.

DL그룹도 홈플러스 점포 5개(울산남구점, 의정부점, 인하점, 문화점, 완산점)를 보유하고 있다. DL그룹 계열사인 DL이앤씨는 2021년 DL그룹과 함께 홈플러스 점포 5곳을 약 7,000억 원에 공동 인수했다. 이후 홈플러스에서 나오는 임차료(임대료)를 받으면서 수익을 내왔고, 현재까지 약 10개월 치 임대료를 지급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10개월 이후다.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앞으로 임대료 지급이 지연되거나 금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면 홈플러스 점포들의 임대 수익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고, 부동산 자산 가치도 하락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가 건설업계의 자금 조달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견 건설사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건설업계는 PF 대출 만기 연장과 자산 유동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금리 변동성이 커지고 시장 신뢰가 위축되면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홈플러스 사태로 인해 부동산 금융시장 전반의 유동성이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회사채 시장의 정상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홈플러스 사태 이후 회사채 시장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조달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며 "신용 스프레드 확대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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