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verything Rally(모든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 국면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달러를 제외하면 올해 강세를 보였던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조정 국면이다. 트럼프 정부 이후 기세가 좋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10월 6일 이후 -25.5% 하락하며 올해 상승 분을 거의 반납했다. 금 가격도 10월 20일 이후 -6.8% 하락했다.
글로벌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M7 주가는 10월 29일 이후 -8% 하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10.5% 떨어졌다. 투기적인 밈주식(이익이 나지 않는데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등락을 반복하는 종목군) 가격은 고점 대비 42%나 급락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 12월 금리인하 확률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10월 말 12월 금리동결 확률은 10% 미만이었다. 지금은 55%까지 올랐다. 경기 침체 위험이 낮은데도 미국 연준은 이미 연속으로 두 차례 금리를 인하했다. 하지만 셧다운으로 경제 지표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더 인하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다. 즉, 단기 자금시장 압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일시 폐쇄가 해제되었다. 그러나 단기 자금시장에서 유동성 부족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이후 받을 수 있는 금리(3.9%)보다 시장 단기 금리(일일물 기준 4%)가 높다. 단기 자금이 일부 부족하다는 뜻이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현금부자인 빅테크 기업들마저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오라클(180억 달러)에 이어, 올해 10월 메타는 27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 계획을 공개했다.
이달 3일 알파벳도 150억 달러, 65억 유로 규모의 채권 발행 계획을 밝혔다. 17일 아마존도 15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예고했다. 늘 유동성이 풍부하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현금 창출 규모가 투자 증가 속도를 능가하지 못했다는 반증인 것이다.
아직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마존, 알파벳, MSFT, 메타 등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영업현금 흐름은 투자 규모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속도(23년 이후 연 평균 영업현금흐름 +30%, 투자 +60%)가 이어질 경우, 2027~28년경 투자 규모가 영업현금흐름을 상회하게 된다. 단순 계산 상 2030년 1.4조 달러 이상 부족하게 된다.
연간 미국 국채 발행 규모가 2조 달러다. 이대로 가면 자금조달 수요가 향후 2~3년 뒤 급증할 위험이 있다. 강력한 자금 수요는 향후 금리가 크게 높아질 가능성과 함께 주식시장 입장에서는 주된 매수세력인 자사주 매입 여력이 부족해 질 가능성을 뜻한다. AI라는 블랙홀 때문에 의외로 유동성이 부족한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AI 때문에 발생하는 블랙홀은 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AI 붐 덕분에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대만과 국내 경제에서 생각보다 투자와 소비는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챗GPT 출시 이후 대만 수출은 물량 기준으로 46% 급증했다. 반면 대만 내 투자는 동 기간 동안 +12%, 민간 소비는 +5.1%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내 경제도 마찬가지다. 물량 기준으로 국내 수출은 2023년 이후 +17% 증가했다. 반면 소비는 동기간 중 +3.2% 증가에 그쳤다. 국내 투자는 건설투자 감소 영향으로 -4.1% 감소했다. AI에 의한 공급부족이 심각한 인플레로 이어져, 버블 붕괴 위험이 높아지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AI로 의한, AI를 위한 투자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들 업체들의 주가 변동성이 커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내년에도 주식시장 변동성은 좀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AI 버블 논란은 일러 보인다. 최근 위험자산 가격 하락은 여름 이후 주가 상승에 따른 피로와 미국 셧다운에 따른 유동성 부족 현상이 연장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큰 판이 바뀌는 것으로 보기는 일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