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금융법) / 롤링주빌리(주빌리은행) 이사장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금융법) / 롤링주빌리(주빌리은행) 이사장

서민금융의 세계적 유명사례로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 꼽힌다. 그라민은행은 1983년 설립된 소액대출 전문은행이자 사회적기업이다. 유누스 박사는 1973년부터 소액대출사업을 시민운동으로 시작했으며, 1976년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1983년에 정식 은행으로 출범시켰다. 그라민은행의 비전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금융'이고 미션은 '가난한 사람을 빈곤의 굴레에서 탈출시키고 그 가능성을 일깨우기 위해 종합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라민은행의 주요 역할은 담보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농촌 빈민과 여성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을 제공해 빈곤 탈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존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던 취약계층에게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경제 활동 기반을 마련해 주면서도, 대출 상환율은 약 98~99%에 이를 정도로 성공적인 운영을 지속하고 있다. 이 은행은 2025년 9월 기준으로 24,118명의 직원이 2,568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지점망을 통해 약 1,100만명에게 소액대출을 함으로써, 가족을 포함하면 약 4,50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융지원을 하고 있다. 

초기자금 27달러로 시작된 시민운동이 50여 년 만에 방글라데시의 대표적 금융기관으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유누스 박사와 그라민은행은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라민은행은 세계의 다양한 국가에서 빈곤 퇴치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국가는 그라민은행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가난한 이들의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소액대출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시민운동과 공적 서민금융  

'더불어사는사람들'은 2012년 이후 무담보·무이자·무보증의 '3無(무) 대출'로 2025년 1분기까지 총 8,681명에게 약 38억 원의 대출을 했다. 출발은 이창호 대표의 사재 3천만 원과 일부 기부금이었다. 3無 대출이지만 연체율은 제도권 금융의 저축은행보다 낮다. 이용자는 대개 제도권 금융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분들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은 물론이고 카드론조차 사용할 수 없고 심지어 대부 업체에서 거절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취급한 대출 총액은 7억 8,804만 원인데 이 중 연체액은 5,708만 원에 불과하다. 연체율은 약 7.2%로, 저축은행업권 연체율 8.52%보다 낮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의 평균 대출이자율이 9.7~10%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따뜻한 마음으로 출발한 3無 대출 시민운동의 긍정적 효과가 돋보인다.

2024년 그라민은행의 평균 대출이자율은 대출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사업용 대출은 약 20%, 주택대출은 약 8%, 학자금 대출은 재학 중 무이자, 졸업 후 5%이며 극빈층에게는 무이자로 대출되고 있다. 상환율은 2018년 기준 99.11%로 매우 높은 편이다. 연체율에 대한 수치는 공개되어 있지 않으나, 상환율이 99%를 넘는 점으로 미뤄 매우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5년 6월 말 출시된 '경남동행론'은 저신용, 저소득 서민을 위한 저금리 소액대출 프로그램으로, 경상남도와 서민금융진흥원, 지역 금융기관 간 협력으로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지역 맞춤형 공적 서민금융사업이다. 대출한도는 최소 50만 원~최대 150만 원, 금리는 연 8.9%, 2년 만기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이다. 극빈층에 대해 무이자로 대출하는 그라민은행이나 더불어사는사람들의 3無 대출에 비교하면 금리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다만, 1%로 대출한 '경기도 극저신용대출'이 '지속가능성' 면에서 어려움을 겪은 점을 고려하면, 8%대 금리는 현재 저축은행의 대출금리 수준이라는 점에서 공적 서민금융의 현실적 한계로 이해된다. 

공적 서민금융과 관계금융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이란 금융기관이 고객과의 장기적 신뢰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 형태로, 기존의 단순 거래 중심에서 벗어나 고객 중심의 관계 지향적 금융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이나 그라민은행 모델의 시사점은 관계금융으로 요약된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의 대출 원칙은 관계금융이다. 즉, '소액부터 성실함을 바탕으로 거래한다'는 것과 '관계금융 형성을 위해 차주와 긴밀히 연락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무이자 대출의 따뜻한 마음은 돈을 빌리는 사람의 양심을 울린다. 그 결과가 비교적 양호한 연체율로 기록되었고, 양호한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라민은행의 관계금융은 지역공동체 그룹을 기반으로 한 신용관리 시스템이며, 대출금 상환율을 높이고 빈곤층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핵심 구조다. 그라민은행은 담보 없는 소액대출을 지원하는 대신, 대출자들을 5명씩 소그룹으로 조직하고 이들 그룹이 다시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다. 대출은 개인별로 지급되지만, 그룹 내에서 첫 2명이 성공적으로 원금과 이자를 분할 상환해야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그룹원이 약속한 대로 상환해야 추가 대출이 가능하며, 이런 집단적 책임과 상호 감시는 높은 상환율(약 99%)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공적 서민금융을 확대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대출이자의 선정은 지속가능성 면의 고려가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현재 2.5%이고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약 4.5% 내외이다. 대통령의 '잔인한 금리'라는 핀잔을 피하려면, 기준금리의 2배수 이내 또는 5% 내외의 금리, 즉 그라민은행이 졸업한 대학생에게 적용하는 금리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다만, 5% 내외의 금리로 공적 서민금융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려면, 관계금융 형성에 대한 큰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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