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목록 ( 총 :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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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서핑, 비치 보이스
한국의 여름 문화에 서핑이 자리 잡은지 꽤 지났다. 2000년대 초반 제주 중문과 부산 해운대에서 알음알음 시작된 한국 서핑문화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수도권에서 가까운 동해에 자리 잡게 됐다. 그 중에서도 양양이 중심이다. 조용한 어촌 마을이던 죽도 해변이 상전벽해를 이뤘다.미국 뉴욕 브루클린부터 서울 문래동까지, 청년 문화에 탐닉한 이들은 늘 가난하기에 집값이 저렴하고 낙후된 동네에 터를 잡는 법이고, 이는 서핑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외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서핑은 소셜미디어의 등장을 타고 알음알음 알려졌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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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걸그룹 삼국지
주 단위로 이슈가 바뀌는 현재의 대중음악계지만 2023년은 4세대 걸그룹이 주도하는 부동의 한 해가 될 것 같다.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트와이스, 블랙핑크, 레드벨벳의 시대에 이어 4세대 걸그룹도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의 3강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트브레’ 이후, ‘뉴아르’가 정착한 것이다. 흥행과 화제성 모두 다른 그룹이나 가수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트브레 시대를 주도했던 기존 3대 기획사, 즉 SM, JYP, YG 소속 그룹이 없다는 게 우선 흥미롭다. 걸 그룹 시장에서 3사가 주춤하는 사이, 그 자리를 차지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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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젊었던 나라의 회상
산울림이 한국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1980년대의 동물원, 1990년대의 황신혜밴드, 2000년대의 장기하, 그리고 2020년대의 콩코드… 어느 시대에나 산울림의 직접적 자장안에 머무는 뮤지션들은 존재했다.흔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뮤지션을 해외 아티스트로 뽑는 풍토에서, 산울림은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몇 안되는 영감의 원천이다. 그들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 나왔던 산울림 트리뷰트 앨범은 당시 나왔던 비슷한 기획의 컴필레이션에서도 단연 발군이다.특히 자우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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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한국 포크의 탄생
코로나 시기, 집에만 있게 된 사람들은 기타를 샀다. 아파트가 일반적이니 일렉트릭 기타보다는 어쿠스틱 기타가 주였다. 악기 회사의 매출은 올랐고,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에서 기타를 팔고 사는 사람들도 늘었다.팬데믹과 격리가 물러간 이후에도 음악계에는 록 보다는 포크 싱어송라이터가 주를 이룬다. 한국 포크의 탄생은 언제 어디였을까.흔히는 1960년대 명동에 있던 '쎄시봉'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초반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조영남 등이 청춘을 보냈던 곳이다. 1950년대 초반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음악 감상실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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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음악과 식물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선인장조차 100% 사망률을 보이는 '킬링 핸드'였다. 어떤 식물도 들이지 않고 오랜 시간을 지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에서도 결국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듯, 우연히 집에 들어온 고무나무는 기적의 생존을 해내고 말았다. 모질고 모진 무관심과 방치를 이겨내고 새 잎을 틔웠다. 그 모습이 경이롭지 까진 않았지만 아주 조금 신기했다.조금씩이나마 관심을 줬다. 양지 바른 자리를 내주고 정기적으로 물을 줬다. 급기야는 생전 처음으로 분갈이란걸 해줬다. 작년 여름 내내, 고무나무는 쑥쑥 컸다. 왜 이제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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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욕망 불변의 법칙
더 이상 책과 음반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 방을 대폭 구조조정했다.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구석구석 쌓여있는 온갖 짐들을 다 치웠다.책상 서랍을 뒤지던 중 한 무더기의 녹음 테이프를 발견했다. 일련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Metal N' Pop'. 기스와 먼지 투성이인 케이스, 빛 바랜 잉크로 씌여진 글씨들. 그런 테이프가 한 100개쯤 서랍장 속에 빼곡이 들어 있었다. 라디오와 함께 보내던 10대의 기록이다. 방송을 들으면서 한 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었던 노력의 산물이다.중학교 입학과 함께 어머니는 선물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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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시간과 돈
언젠가 IT쪽 사람들이 음악을 컨텐츠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꽤나 불편했다. 음악이 쌓아온 지난 세기의 가치와 로망 같은 걸 무시하는 듯 보였다. 창작자의 고뇌, 음악이 주는 흥분과 기쁨을 날려버리고 주가로 대변되는 수치만을 언급하는 이들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영국의 록 뮤지션 모리씨는 메이저에서 인디 레이블로 이적하면서 “메이저 레코드의 수장들은 더 이상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경영학, 회계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중요한 자리에 앉으면서 음악 대신 숫자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공감했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