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추진에 산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가장 타격이 큰 곳은 철강업계다. 정부 제시안 대로 수소환원제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업계도 액화천연가스(LNG)추진선을 넘어 암모니아 등을 연료로 쓰는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조선업계는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로 인한 수혜가 예상된다.
지난 5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철강업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난 2018년 1억120만 톤에서 2050년 450만톤으로 95% 감축해야 한다. 철강업은 최다 탄소배출 산업으로 국내 전체 배출량의 17% 가량을 차지한다.
탄소중립위원회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운영 중인 용광로 12대를 모두 전기로로 전환하고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100% 도입해 코크스 생산용 유연탄을 수소로 대체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은 사실 아직까지 실체가 없다"며 "누구도 이걸 지금 구현해내지 못하고 있어 상용화가 가능할지 여부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용광로를 전기로로 대체한다고 해도 전기를 만드는 연료가 석탄 등 화석연료면 안되기 때문에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로를 돌려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재생에너지도 국내 전기 사용량을 100%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용화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또한 전기로로는 순도가 높은 고급 강판을 제조하기 어려워 전기차에 필요한 강판이나 선박용 후판을 만들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용광로를 전기로로 바꾸는 수소환원제철 도입에 드는 비용이다. 철강협회는 이 비용을 68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비용과 기술력이 필요한 수소환원제철 도입을 위한 부담을 기업에만 지우는 게 과연 합당한가 생각이 든다"며 "개별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하는 것은 비용 문제도 있고 효율성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과 세심한 대책 입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도 국제적인 탄소중립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전 세계 선박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오는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40%, 2050년까지는 70% 줄이겠다는 목표다.
이러한 규제에 맞추기 위해서는 현재 대표 친환경 선박으로 꼽히는 LNG추진선으로는 불가능하다. LNG는 기존 벙커C유 대비 황산화물은 90% 이상, 질소산화물은 80% 이상, 이산화탄소는 15% 이상 배출량을 줄일 수 있지만, 연소 시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바이오 연료, 수소, 암모니아 등 탄소중립 연료를 쓰는 선박이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차세대 선박 연료로 암모니아와 메탄올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해운업계가 현재 보유한 선박을 이러한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 LNG추진선만 해도 1척당 2억달러 안팎의 고가이다. LNG에서 나아가 암모니아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은 이보다 가격이 뛸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조선업계는 이러한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로 인해 신조 수주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업계는 현재 친환경 선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한국선급과 수소 연료 추진 선박에 대한 세계 첫 국제 표준 개발에 돌입하는 등 수소 선박 기술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오는 2025년 암모니아 추진선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환경 규제는 해운업계에는 선박 교체로 인한 비용 때문에 부담이지만 조선업계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신조 발주가 늘기 때문에 호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