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노조, 산업계, 산업은행, 그리고 언론까지 나서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안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래차 전환, 전기차 생산에 대해선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도 빨리 해야 한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12일 진행된 'GM 미래 성장 미디어 간담회' 자리에서 스티브 키퍼 GM수석부사장은 이런 기대를 단 칼에 잘랐습니다.

"2025년까지 10종의 전기 신차를 한국에 출시할 예정이다" "한국 생산 계획은 없으며, 전량 수입한다"

적어도 5년은 한국에서 GM의 전기차가 생산될 수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말도 있었습니다. "개발중인 CUV 모델 외에는 추가 제품 생산 계획이 없다"고 말이죠. 노조의 주장은 '한국 홀대'로 정리 됩니다. 정말 그럴까요? 한번 보겠습니다.

▶ 스티브 키퍼 GM수석부사장ⓒ한국지엠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대전환은 어느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전 세계가 미래차 전환에 뛰어들었고, 지금이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 전환의 변곡점입니다. 자세히 봐야 할 것은 수익성입니다. 한국지엠이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선 '돈'이 벌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생산단가가 비슷해 지는 시점은 이르면 2026년입니다.

차종별로는 세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대형차는 2026년, 소형 전기차는 2027년을 기점으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생산단가 역전이 이뤄진다는 전망인데요.

유럽을 기준으로 보면 현재 휘발유 차량의 세전 평균 소매가격은 1만8600유로(약 2500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반면 중형 전기차 가격은 3만3300유로(한화 약 4500만원)에 달합니다. 가격이 맞지 않아 각국 정부들을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원하며 구매를 장려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기차는 비싸고, 라인업이 많지 않고,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는 바가 크면서도 모델간 경쟁은 심한 편입니다. 게다가 배터리와 같은 고가 부품이 많은 탓에 내연기관차 대비 제조원가는 1.5~2.5배에 달합니다. 비싸긴 한데 돈이 안되는 것이죠.

단점은 또 있습니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소재들의 가격 변동이 심한 탓에 안정적인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격을 내리기도, 올리기도 어려운 탓에 수익 자체가 낮다는 것이 완성차 업계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이 탓에 GM은 물론 벤츠, BMW, 폭스바겐, 그리고 현대차도 내연기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효율성 향상에 거액을 투자하고, 전기차와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중입니다. 내연차 수익성을 높이고, 여기에서 얻은 수익을 다시 전기차에 투자하는 선순환 체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합니다.

▶ 스티브 키퍼GM수석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가운데),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오른쪽),로베르토 렘펠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사장(왼쪽)ⓒ한국지엠

왜 GM은 한국에 트블·CUV를 줬나

"전기차=돈된다"라는 시장의 인식은 깨졌죠. 제가 취재한 한국지엠 관계자 역시 2~3년 안에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면, 재무 상황이 더 안좋아진다는 우려를 보였습니다. 스티브 키퍼 GM수석부사장사장이 이를 세간에 속 시원히 정리해주길 바라는 눈치도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바대로 전기차 영업이익이 내연차 만큼 올라가려면 2027년 이후는 돼야 합니다. 때문에 당장의 캐시카우는 내연기관이고, 이 차를 판 돈으로 한국지엠이 정상화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 입니다.

트레일블레이저와 2023년 초 출시 예정인 크로스오버 차량(CUV)이 글로벌 GM 라인업에서 갖는 독특한 위치입니다. 극한의 다운사이징 엔진을 장착한 이 두 차량은 '친환경' 마크를 달고 세계를 달리죠. 그리고 전 세계는 이 '친환경차'를 자국에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은 10개 이상의 주에서 연 판매량 4500대 이상 기업에 '친환경차 의무 판매제'를 적용중입니다. 이 비율은 해당 브랜드의 전체 생산량 대비 7%에서 시작해 2025년에는 22%로 높일 예정인데, 무서운 것은 실적 부족분 1대당 5000달러의 과징금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GM의 주력차량 면면을 보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쉐보레 타호·실버라도·콜로라도, GMC 시에라 등 대형 픽업, 대형 SUV에 집중됐습니다. 고배기량, 비싼 가격, 높은 마진율을 자량하는 볼륨 모델이죠. 돈은 많이 벌어다 주는데 '친환경'과는 거리가 있어요.

볼륨 모델을 팔기 위해선 '친환경차'를 더 팔아야 하는데, EV차는 '돈'이 안됩니다. 그래서 트레일블레이저가 미국에 수출돼야 합니다. 국내 완성차 중 북미 수출 1위 모델에 오른건 다 이유가 있는거죠.

이렇게 잘 팔리는(팔려야만 하는?) 내연차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하고, 전기차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매입하고, 직원 교육을 다시 시킨 후 공장을 다시 돌릴 이유가 없겠네요.

간단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GM의 주력 차량은 크고, 배출가스가 많은 대형SUV, 픽업트럭이고, 마진(매출 총이익)도 높다. △주력 차종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차 의무 보급률을 채워야 한다. △전기차는 생산도 어렵고, 이윤도 적다. △때문에 친환경차(트레일블레이저, CUV) 비율을 높여야 한다. △내연기관 친환경차는 마진도 좋고, 수요도 많아 한국지엠 정상화에 도움이 된다.

이상이 한국지엠이 굳이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는(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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