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개월째를 맞고 있지만 사망자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 상황과 제반 여건을 고려해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5일 국토안전관리원 건설공사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동안 발생한 사망사고는 총 42건, 사망자는 55명(잠정)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53건·53명보다 사망자 수는 2명 더 늘었고 재작년(39건·41명)과 비교하면 14명이 급증한 수치다. 특히 올 들어 4월 둘째 주까지 집계된 사망자(58명·잠정)의 69.5%(40명)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현황과 현장 상황 등을 내세워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건설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법 개정 등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한 시공사 건설현장 직원은 "중대재해법 시행 후 본사로부터 '안전 수칙 준수' 요청이 이어지고 있고 현장에서도 근로자들에게 철저히 교육하고 있지만 (일부 근로자들은) 여전히 안전고리 사용을 등한시 하거나 비계(건축공사 시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상태 점검을 소홀히 하는 것이 확인돼 주의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367개사(상시근로자 50명 이상)를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 안전관리 실태 및 중대재해법 개정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경영자의 69%가 중대재해법 제정 후 '안전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아졌다'고 답했지만 근로자의 경우 32.7%만 '매우 높아졌다'고 했다. 또 '안전에 대한 관심도에 변화가 없었다'고 답한 경영자는 0.5%에 불과했지만 근로자의 경우 15%에 달했다.
이에 상당수 기업들이 근로자에게도 안전 수칙 준수 의무와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 사측의 의무와 책임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면책규정을 도입해 업체 측이 사전 예방 조치를 다할 경우 사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내용을 삽입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일각에서는 건설안전 관련법이 너무 많고 복잡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실제 현행법상 건설기술진흥법·건축물관리법·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소방법·고압가스안전법과 각 지자체별 심의 등 관련 법령과 시행령 다수 존재하는 상황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현장 총괄 책임자인 현장소장이 아닌 경영자를 처벌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기존 법령들도 시공사 측에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면서 "회사 측이 안전을 누차 강조했음에도 근로자의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관리 감독 불량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을 보완하는 중대재해법에서도 근로자의 과실로 인한 사고 책임 소재는 없어 사고 예방 효과가 낮아질 수 있고 경영자 측과 노동계의 이견이 계속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승근 경남도립남해대학 산업안전관리과 교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중대사고로 인한 근로자 사망 시 사용자 측에 7년 이하의 징역이 내려지도록 돼있지만 상한법의 한계로 6개월 이하 형량이나 집행유예 선고가 빈번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재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안전법의 근로자 무과실 원칙이 중대재해법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이는 선진국의 관련법 사례와 차이가 있을 뿐더러 사측과 노측의 입장차를 더욱 커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윤석열 대통령 인수위는 중대재해법 처벌 강도를 벌금형으로 완화하고 중장기적으로 개정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수위 내부에선 근로자 사망 시 '1년 이상 징역', 다치거나 질병에 걸리면 '7년 이하 징역형'의 내용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