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업계가 국내외 경영 여건 악화와 수주 부진으로 봄 성수기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고 협력사들의 하도급 대금 증액 요구와 집단 반발 움직임으로 시공사의 어려움은 배가됐다. 이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인건비 증가로 현장 운영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통상 봄은 신규 착공과 대형 수주 소식이 많은 계절이지만 올해는 체감 건설 경기가 얼어 붙었고 금리 인상 기조로 자금조달 여건마저 녹록치 않아 돌파구 모색은 좀처럼 쉽지 않은 모습이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3.3㎡당 평균 공사비용은 지난해 연말보다 10∼15% 올랐고 작년 10월보다 25∼35% 급등했다. 전년 동기보다 10% 이상 가격이 오른 품목은 2020년 말 8.9%에서 올 초 63.4%로 급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원자재 수급난이 심화되면서 가격 상승 폭이 커진 영향이다.
대표적으로 철근·골조 가격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철근값은 지난해 t(톤)당 50만∼60만원에서 최근 100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레미콘 단가는 이달들어 ㎥(입방미터)당 7만1000원에서 8만300원으로 약 13% 올랐고 원료인 시멘트 가격은 15% 이상 올랐다.
이에 평년 건설 경기가 가장 좋았던 3~4월 임에도 올해는 상당수 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건설경기실사지수(CBSI)는 전월보다 16.1포인트(p) 하락한 69.6p를 기록했다. 또 3월 전문건설업 경기실사지수(SC-BSI)는 49.6p로 작년동기(87.3) 보다 무려 37.7p 급락했다.
또 지난달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신규 공사수주 BSI는 전월보다 33.4p, 16.6p 내려앉아 각각 58.3, 63.4를 기록하는 등 주요 시공사의 수주 상황은 당초 예상치보다도 악화되고 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3월과 4월에는 혹한기 이후 공사가 늘어 지수가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올해 수치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면서 "건설 자재비 급등과 협력사들의 잇단 하도급대금 인상 요구, 파업 우려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 부담으로 착공을 미루거나 기본형 건축비 상향을 기대해 분양을 늦추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착공한 현장은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공공 부문 발주가 줄어 시공사의 수주 물량이 감소세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재값 급등과 여러 여건들로 착공을 두어 달 정도 미루는 곳이 있지만 공기지연 우려로 더 미룰 수는 없다"면서 "안전 규제 강화로 현장에 공사 속도를 압박하지도 못해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일단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공사들은 하도급 대금 인상을 요구하는 협력사와 공사 발주처 사이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특히 민간 공사 대부분은 공공 발주처의 공사와 달리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존재해 사실상 계약 금액 조정이 어렵다. 다만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민간 공사의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은 불공정 계약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놓은 터라 최근 일부 대형사는 일부 민간 발주처에 공사비용 증액을 요구한 상태다.
하지만 공사비용 인상 가능성에 회의적인 모습이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발주처가 시공사가 요구하는 만큼 공사비를 수정해 줄 가능성은 없다"면서 "발주자와 시공사 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되거나 법적 분쟁으로 치닫으면 공사 중단과 공기 지연 등 쌍방 소모전만 커진다"고 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기본형 건축비 인상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세금 일시 완화 등 실질적인 정부 지원책만이 건설업의 위기를 완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주요 현장 수익성이 더 좋지않다"면서 "분양가 현실화는 불어난 건설비 부담을 그나마 현실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철한 연구위원은 "최근 주요 건설업 지표는 과거 금융위기 당시 건설 업계가 보인 흐름과 유사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자재값 급등세가 언제 어느 시점에서 풀릴지 알 수 없어 우려가 더 크다"고 했다.
이어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도 어려워지는 등 신규사업에 나서기 힘든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며 "정부는 주요 원자재 관련 세금 완화와 기본형 건축비 인상 등 구체적인 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1일 공동주택 분양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를 작년 9월 정기 고시 대비 2.64% 인상했다. 이후에도 자재값 상승이 이어지자 정부는 6월 1일까지 가격 변동 상황을 검토한 뒤 추가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