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 곡물 가격 변동성이 커진데 더해 최근 환율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영업이익 방어가 어려워져서다.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 추가 타격을 줄여볼 수 있지만 이제 막 새 정부가 출범한 터라 업계로서는 눈치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는 대신 당분간 곡물 수입량을 줄이는 방법 등으로 버텨보겠다는 전략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로 들어오는 식용 곡물 가격은 전 분기 대비 10.4% 상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3.7%나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하면서 곡물 생산량이 줄어 가격 변동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사료용 곡물은 전 분기 대비 13.6%, 전년 대비 47.3% 상승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르면 이달부터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식품업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대신 미주나 호주 등에서 곡물을 수입해오는 방법도 고려 중이나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부담이 가중됐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278원을 돌파하며 연고점을 경신했다. 달러 강세가 지속에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과자, 빵, 라면 등 가공 식품 생산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 중이다.
수출이나 내수에서 판매량이 늘어나도 곡물 가격 인상과 환율 리스크가 커지면 영업이익 하락이 불가피하다. 원·달러 환율이 크게 흔들렸던 올해 1분기에도 식품업계는 쓴 맛을 봤다. 식자재 유통사업과 축육사업으로 몸집을 키운 동원F&B는 올해 1분기에 9479억원(전년 동기 대비 14.5% 상승)으로 매출 규모를 끌어 올렸지만, 주 원재료 가격 상승과 환율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축소했다. 이번에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낸 CJ제일제당도 원부재료 가격 상승으로 식품 사업부문 영업이익에서 타격을 입었다.
곡물 가격과 환율 리스크 압박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우크라이나 농사가 멈췄기 때문에 내년 곡물 가격 변동성도 커졌다고 보면 된다"면서 "곡물 수입량을 줄이거나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방안 외에는 현재로서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제품 가격 인상은 윤석열 정권 초기인 만큼 쉽사리 꺼내 들 카드가 아니라는 부연이다. 윤 정부는 최근 4%대로 오른 물가에 정권 출범 전부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앞서 올해 3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식품 관계사들을 불러 모아 "당분간 제품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역대 보수정권은 반도체·자동차 같은 기간산업은 규제를 풀어주는 반면 식품·유통처럼 생활밀착형 산업엔 제재를 가해 국민 지지를 얻어 왔다.
업계에서는 하반기에나 제품 가격 추가 인상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재료 가격 인상에 따른 식품업계 손익을 계산한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현재의 원재료 단가 상승 흐름이 안정화되지 않는다면 하반기에 가격을 인상해 수익성 방어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제품 가격 인상 효과는 이번 1분기로 대부분 사라졌다"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2분기 실적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