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건설사들이 착공과 분양 일정을 미루면서 새 정부가 내세운 민간주도의 250만호 공급 공약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의구심을 품는 모습이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국내 주택 착공 실적은 11만8525가구로 전년 동기(17만4287가구) 대비 3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분양실적도 20.5% 줄어든 7만8894가구에 그쳤다.
새집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서 올 들어 착공된 아파트는 3만3718가구로 전년(6만8505가구)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분양 최성수기인 지난 4월 수도권 신규 분양은 전년대비 63.2% 급감했다.
건자재 가격 급등과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건설사와 분양업계가 착공과 분양을 미루면서 나타난 결과로 분석된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원자재가격 상승이 주택 착공·분양 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된 지난해부터 건설 자재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올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상하이 항만 봉쇄 등이 겹쳐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품목별로는 시멘트가 지난해 1톤(t)당 6만원대에서 현재 9만원대로 급등했고 레미콘 단가는 ㎥당 7만1000에서 8만원대로 올랐다. 철근 가격도 작년 초 톤당 71만1000원대에서 최근 110만원 수준에 형성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자재가 상승분을 공사비에 적시 반영하는 내용을 담은 공사비 조정 제도와 고분양가 심사제 기준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확실한 개편과 시행까지 우려를 지울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업계에선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최대 인상 폭을 적용해도 현재 원자재 급등세를 따라 갈 수 없을 뿐더러 관계 부처와 국회의 동의가 얼마나 빠르게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기본형 건축비의 최대 인상 폭은 5%로 원가 상승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인데다 이마저도 실무단에서 조합과 발주처의 발반 등을 우려해 신속히 적용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자재 가격 인상분이 의무적으로 (공사비에) 적용되는 강제 규정이 삽입돼야만 업계 수익성 개선과 착공 지연을 개선할 수 있다"면서 "이런 부분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될지 의문이고 법률 개정은 국회의 문턱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재 가격 인상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분양가 상승 요인을 억누르면 시장 혼란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축비와 토지비 등 분양가 결정요인이 상승했음에도 현재처럼 이를 배제한 채 인근 시세와 차이가 큰 로또아파트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장 혼란만 가중 시킨다"고 지적했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로써는 급등한 자재 가격을 공사비에 반영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많지 않다"며 "특히 민간 공사는 공공공사와 같은 에스컬레이션(인상분 반영) 조항이 없어 민간 업자간 인상 조율은 분쟁으로 번질 소지가 있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