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가 재무적 투자자(FI) 보유지분 의무보유 확약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면서 상장 직후 투자자의 주식 매각 우려를 제거했다. 상장을 위한 한 고비를 넘어선 컬리는 만성 적자를 벗어나 수익성 증명과 미래 성장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는 지적이다.
13일 유통업계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컬리는 유가증권시장 본부에 상장을 위한 주권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접수했다. 상장 예비 심사는 통상 45일에서 2개월이 소요된다. 순조롭게 심사를 통과하면 증권신고서·투자설명서 등을 제출 후 수요 예측을 거치게 된다. 그러면 기업공개 데뷔 시점은 이르면 8~9월쯤이 될 전망이다.
앞서 컬리는 지난해 10월 말 상장 주관사를 선정한 뒤 지난 3월 거래소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거래소의 질의와 대표 지분율 등 요구 사항에 대해 컬리와 FI의 논의가 길어지면서 심사 진행이 늦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컬리가 제출한 상장 예비심사 신청 청구서는 거래소 요구에 따른 것이다. 거래소가 창업자인 김슬아 대표 지분율이 작년 말 기준 5.75%에 불과하므로 안정적 경영을 위한 보완 조치로 최소 18개월 이상 보유 지분을 팔지 않고 20% 이상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공동 행사 하겠다는 약정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통상적으로 상장기업은 주식 의무보유 적용 대상자별로 보유 기간을 다르게 설정(6개월~2년6개월)하는 데 컬리의 경우 유니콘 특례상장(시장평가 우수기업 특례) 사례가 되기 때문에 거래소가 18개월로 단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컬리는 상장 심사의 걸림돌 중 하나였던 FI 보유지분 의무보유 확약서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는 실적과 미래 청사진 제시 등이 앞으로 상장 심사 과정에서 컬리가 풀어야할 과제다.
거래소 측에 따르면 밝은 미래 전망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상장한 기업들이 시간이 지나 주관사들이 제시한 장밋빛 미래와는 너무 먼 경우가 등장해왔다. 결국 실적 미달로 기업가치가 하락하자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아 거래소에 대한 시장 비판도 제기됐다. 주관사 또한 질타의 대상이 됐다. 주관사는 자격 없는 기업의 가치를 '뻥튀기'한 이후 높은 수수료만 챙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상장 후 약속받은 보호예수가 해제되며 주가가 크게 붕괴됐다. 상장 후 게임 대장주로 등극한 크래프톤은 공모가 대비 주가가 반토막으로 추락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기 침체 우려에 성장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꺾이고 이른바 거품이 빠지면서 공모주들이 신음하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낮은 공모가 책정이 방법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컬리와 주관사단은 심사 승인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공모 전략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목표 시가총액을 낮춰 투자 문턱을 낮추는 것이 검토될 전망이다.
컬리의 목표 기업가치는 6조~7조원 수준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올해 초 마지막 투자 유치를 받을 당시 4조원 초반대 기업가치를 평가받은 바 있지만 하락장과 성장주에 대한 글로벌 전망이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어 컬리의 몸값도 떨어질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1조6000억원~1조9000억원대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컬리 등 국내 e커머스 기업의 상장 환경이 비우호적이라고 업계가 판단하는 데에는 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기업의 거품이 빠지고 엔데믹이라는 새로운 기업 환경이 조성돼서다. 특히 e커머스에 대한 시장 전망과 분석이 펜데믹인 1년 전보다 한층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최근 들어 현재 실적이 중요한 가치주로 인식돼 가고 있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한때 대표 성장기업으로 꼽혔던 미국 페이스북, 넷플릭스, 페이팔이 올해 들어 주가 폭락을 겪으며 현재 수익성을 평가받고 있다. 이같은 글로벌 상황을 감안하면 국내 성장주로 불렸던 플랫폼과 e커머스들도 달라진 판단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 전망이다.
지금처럼 증시가 부진하고 외형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선 e커머스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 잣대는 과거보다 더욱 깐깐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컬리 기업가치에 대한 의견은 전문가마다 분분하다. 우선 컬리 매출이 증가 추세를 이어가면 고정이용 고객 수를 늘려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미래 전망이 밝다는 의견이 나온다.

컬리가 영국 오카도와 유사한 사업 패턴을 가졌다고 판단한 조상훈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컬리의 기업가치를 산정하려면 PSR(주가매출비율)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면서 "사업구조의 유사성 측면에서 영국의 온라인 식료품 유통기업인 오카도의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면 컬리의 기업가치를 최대 8조7000억원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컬리의 적자 구조가 매출 증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마켓컬리 영업적자는 2177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적자의 원인은 30~40%대 이르는 판매관리비에 있지 않고 사업 확장 때마다 동반 증가하는 물류비용과 인건비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부분 역시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로 해결 가능하다.
이같은 컬리 상황과 엔데믹으로 달라진 e커머스 기업 환경을 감안하면 컬리의 몸값은 2조원대에서 1조6000억원선을 오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초 기업가치 100조원을 찍었던 쿠팡 시총도 13일 현재 27조원에 불과하다.
물류센터 강화는 컬리가 지속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다. 상장을 통해 조단위 자본을 조달받으면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인 물류센터 구축에 사용할 계획이다.
컬리 측은 "자체 개발한 데이터 수집·분석 시스템을 통해 신선식품 물류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상장을 통해 물류센터를 늘리고 종합몰로 확대 개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업계 한 관계자는 “저금리 때에는 쉽게 자금 조달할 수 있고 금리부담도 낮아 완전 매도자 우위시장이어서 기업 자산 가격에 거품이 심하게 끼곤 한다"면서 "하지만 금리인상 기조로 이같은 거품이 빠지려고 하니까 e커머스 등 플랫폼 기업 가치가 한층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