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우유 제품.ⓒ연합뉴스

원유값 책정을 놓고 정부와 낙농가의 첨예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우유 제조사들이 제때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폭염으로 원유 생산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낙농가 납유 거부까지 현실화하면 우유 납품은 물론 커피 프랜차이즈, 식품업계까지 도미노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원유 가격 조정일인 지난 1일까지도 정부와 낙농업계는 새 원유 가격을 확정하지 못했다. 양측이 이견을 보이는 건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때문이다. 정부는 2013년부터 낙농가의 생산비에따라 원유 가격을 책정하는 현행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원유 가격을 결정했으나, 이 제도가 낙농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되면 원유 가격은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뉘어 책정된다. 음용유는 흰 우유, 가공유는 치즈 등 유제품의 원료다. 이 제도의 골자는 음용유의 가격은 리터당 1100원으로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은 800원대로 낮춰 유제품에 국산 사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국내 우유 제품 소비가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음용유는 줄어든 반면 식습관 변화로 유제품은 늘어나는 흐름으로 변화한 데 따른 개편안이다.

낙농진흥회 조사에 따르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001년 31kg에서 2021년 26.55kg으로 14% 넘게 줄었다. 반면 치즈 등 유가공품을 포함한 전체 유제품 소비는 같은 기간 12.4kg에서 14.78kg으로 19% 이상 늘었다.

현재 유제품 대부분은 외국산 원유로 만들어지고 있다. 낙농진흥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산 원유 생산은 20년 새 234만톤에서 203만톤으로 줄었지만, 원유 수입은 같은 기간 65만톤에서 251만톤으로 확대했다.

▶ 원유생산 및 공급규정상 지난 5월 24일 통계청의 축산물 생산비 조사가 발표된 이후 한 달 안에 원유 기본가격 협상을 마쳐야 하지만 낙농가와 유업체가 생산비 연동제 폐지와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두고 대립하고 있어 협상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낙농가에서는 이렇게 되면 농가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사료 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가공유 가격이 많게는 27%까지 줄어버리면 생산비도 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낙농가 대표 단체인 한국낙농육우협회는 납유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의사를 수차례 나타내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원유 가격 조정 기일이 지났음에도 양측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우유 제조사들만 난감해진 상태다.

한 유업계 관계자는 "계절적 요인으로 7~8월은 젖소 원유 생산량이 감소해 수급이 불안정해지는 시기인데 낙농가가 납유 거부를 해버리면 정말 난감하다"며 "장마와 태풍까지 와 수급불안 변수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우유 제품 공급이 줄면 카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등도 줄줄이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우유가 들어가는 메뉴가 과반이 넘는다"면서 "우유 공급이 줄면 매장에서도 음료 판매가 불가해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일부 우유 제조사들은 유통 채널에 폭염으로 인한 원유 공급 부족으로 8월 말까지 일부 제품 미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유업계 관계자는 "11년 만에 마트 유제품 매대에서 우유가 자취를 감추는 우유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조속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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