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 고점 인식이 경매 시장까지 번지면서 주택 가격을 더 끌어내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화한 가운데 일반 매매에서 밀린 매물이 경매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마저도 거래로 이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주택 매수자의 관망세는 금리인상과 집값 고점인식이 맞물리면서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서울 지역 3000가구 이상 대단지, 전체 33개 단지 가운데 8곳은 지난달 거래량이 단 한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단지 네 곳 중 한 곳은 거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똘똘한 한채로 불리는 강남지역도 같은 상황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4424가구) △강남구 개포동 개포프레지던스자이(3375가구) △고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3658가구)는 지난달부터 거래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이밖에 △강동구 암사동 강동롯데캐슬퍼스트(3226가구)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14단지(3100가구)도 마찬가지였다.
거래량 급감세는 금리 인상과 집값 고점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통해 종합부동산세 과세 체계를 주택 수에서 가액 기준으로 바꾸고 다주택자의 중과 세율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다주택자도 급매를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매수자는 금리 인상과 집값 고점 인식으로 관망세를 보이고 다주택자 등 매도자는 보유세 인하 기대에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역대 최악의 거래 가뭄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매매 시장에서 아파트를 처분하기 어려워지자 경매 시장에 매물이 몰리고 있다. 부동산 경매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달 경매 진행 건수는 전체 건수 96건 중 68건으로 집계됐다. 경매 시장에 넘어온 물건 중 70%가 실제 경매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지난해 7월 전체 49건 중 12건(24%)만 경매가 이뤄졌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5월과 6월 각각 38건, 45건이었던 경매 진행 건수도 올해에는 59건, 57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아파트값 상승장에서는 경매로 넘어오더라도 경매보다 매매 시장에서 처분하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에 취하되는 사례도 많았다"며 "최근엔 매매 시장에서 거래가 힘들어지면서 경매 진행 건수는 증가하는 반면 취하 건수는 줄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매물이 일반 매매 시장에서 경매로 넘어가고 있지만 거래 성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부동산 시장에 집값 하락 신호가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경매 시장 매물에도 가격 고점 인식이 번지고 있다.
지지옥션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경매의 낙찰률(경매 진행 건수 대비 낙찰 건수 비율)은 26.6%로 집계됐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지난 2008년 12월 낙찰률이 약 22.2%를 기록한 이후 사실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낙찰률이 금융위기 수준까지 떨어진 셈이다.
최근 진행되는 서울 아파트 경매에서는 1~2회 정도 유찰되는 것이 기본일 정도로 유찰이 흔해졌다는 게 부동산 경매 전문가의 전언이다. 경매로 넘어온 매물이지만 여전히 가격이 높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경매에서 1회 유찰되면 최초 감정가에서 20%씩 입찰 가능 최저가가 낮아진다.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최근 호가도 조금씩 떨어지다 보니 투자자들이 경매 감정가를 비싸게 느끼고 있다"며 "예전 같으면 1회 차에 낙찰될 만한 물건도 현재는 1~2회 유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경매가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경매 시장의 관망세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선임 연구원은 "대출규제가 완화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이 추세와 관망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매시장으로까지 번진 거래량 감소는 집값 하락을 더 자극하는 요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값 상승 피로감이 큰 상황 속에서 수요자 민감도를 고려할 때 주택 거래 관망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올 하반기 주택가격은 추가 금리 인상,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 등 외부적인 요인이 계속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매수 위축도 이어지면서 하향 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