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부의 상징이 된 지역 강남구 청담동. 비싼 옷과 장신구로 인생의 찬란함을 만끽하는 이곳에서 '삶의 고통'을 마주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났다. 인간 삶의 잔혹성과 기괴함을 그린 거장들의 그림이 청담동 분더샵에 상륙해서다.
그로테스크(기괴) 회화 대표주자인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과 21세기 생존화가인 아드리안 게니(45)의 작품들간의 세기를 뛰어넘는 '대화'가 9월 3~5일 신세계 분더샵 청담에서 펼쳐진다. 전시 '육체와 영혼(Flesh and Soul: Bacon/Ghenie)'은 청담동과 대비되는 '고통'을 거침없이 내비쳤다. 인생의 번뇌를 여과없이 호소하는 이들 작품은 전시장 밖의 화려한 명품거리와 극명히 달랐다.

그러면서도 '행복과 고통'은 삶에서 따라오는 '한 세트' 상품이란 말이 돌연 떠올랐다. 이번 전시는 '서울 아트 위크'의 하이라이트 전시이자 한국 대표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 키아프 플러스 그리고 서울에서 첫 선을 보이는 '프리즈 서울'과 같은 기간에 개최된다. 전 세계 미술관 관계자들과 슈퍼컬렉터들이 모이는 프리즈 서울에 맞춘 행사다.
지난 2일 진행한 미디어 프리뷰행사에서 전시 주최 측인 크리스티는 베이컨과 게니의 주요작 16점을 공개하며 두 작가가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대화형(dialog) 전시를 최초 비경매형으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베이컨의 유명한 교황 시리즈 중 스페인 아티스트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Portrait of Innocent X)을 음울하지만 매력적으로 재해석한 초상화를 위한 습작 II(Study for Portrait II), 교황을 위한 습작 I(Study for a Pope I)과 2차 세계대전의 폭력과 억압, 문화적 폭정을 그린 게니의 눈꺼풀이 없는 눈(Lidless Eye)과 컬렉터 3(The Collector 3)가 상대방을 마주하는 각도에서 전시돼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베이컨은 특유의 기괴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폭력, 갈등, 격동, 삶의 처절한 고통을 표현하는 인간의 형상을 그렸다. 인간 심연의 고뇌와 생의 고통에 천착한 베이컨의 작품은 피와 상처, 살점 등 강도 높은 소재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삶을 마주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정윤아 크리스티 시니어 스페셜리스트는 "전쟁 시대를 고스란히 겪어온 베이컨의 삶은 인간의 고통을 강렬하고 원초적인 화풍으로 과감하게 드러내는데, 아시아권에선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생존한 체험과 관찰을 담은 작가인 만큼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란 설명이다.
그의 작품은 한 점당 가격이 기본 수백억원을 호가하는데, 1000억원에 이르는 작품도 다수다.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240만달러(약 1937억원)에 낙찰되며 당시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베이컨의 작품은 세계 각지의 거의 모든 대표적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 세대 앞선 베이컨처럼 아드리안 게니(1977년 루마니아 출생) 역시 인간의 트라우마를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게니는 루마니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억압적인 공산주의 정권에서 자라나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작가로 성장했다.
그는 집단의 고통과 선과 악의 힘을 표현하는 데 매달렸다. 게니는 물감을 붓거나 뿌리거나 팔레트 나이프로 긁어내는 등 비전통적 기법으로 거칠고 들쭉날쭉한 질감을 더해 어둠과 고통을 흡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표현해냈는데 세기적 선배작가들이 쓰던 다양한 기법을 자신만의 노하우로 발전시켜 인생의 어두운 측면을 매력적인 색채로 구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게니의 작품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해머 미술관, 벨기에 겐트의 현대미술관(S.M.A.K.), 중국 상하이의 롱 미술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고 한국에서도 기자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이번 전시는 크리스티의 첫 비경매 목적의 행사다. 글로벌 기업인 크리스티가 한국 미술 애호가들과 보다 더 소통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베이컨과 게니의 대표작들이 마치 서로 대화를 나누듯 연극적으로 배치된다. 언뜻 보면 연극무대에서 각자의 독백과 토로를 쏟아내는 분위기가 풍겨난다.
두 사람은 한 세대라는 간극을 두고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두 작가 모두 고통에 직면한 인간에 집중해 이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대를 건너뛴 두 거장이 비슷한 화풍과 메시지, 그리고 고유한 개성은 두 명의 주인공이 마치 모든 이미지를 총동원해 극을 이끌어가는 듯 한 모습을 보인다.
크리스티안 알부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공동대표는 "두 화가의 대화적 전시의 제목을 '육체와 영혼'으로 정한 데에는 이들 작가가 직관적으로 풀어낸 이미지들이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대해 사유하게 하기 때문"이라면서 "두 작가는 거침없이 풀어낸 그림들로 인간의 어두운 역사와 아픔을 예술의 장단점을 동원해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림들은 침묵의 이미지로 서로의 아픔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고 봤다"면서 "현대미술만 현 시대에 메시지를 주는 게 아니라 그림은 시대를 뛰어넘어 관람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크리스티(Christie’s)의 국내 최초 비경매 전시 첫 전시이며, 작품 가격으로 환산하면 총 4억 4000만 달러(약 5800억 원) 이상을 호가한다. 유명 미술관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빅이벤트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2주전 사전 예약 1000명을 마감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날 미디어 프리뷰에 참석한 프란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대표는
한국 미술 시장의 폭발적 성장세에 강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벨린 대표는 "아시아 미술 핵심도시가 되기위한 모든 제반 조건(산업, 애호가, 학계, 공공기관)이 마련돼 있다"면서 "앞으로는 시간이 (남은 과제를) 해결해 줄 것이며 한국은 예술의 성지 홍콩의 아성을 위협할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그는 "크리스티는 젊은 작가들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 실행 중이며 한국 미술시장에서 크리스티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크리스티는 올해 상반기에만 41억 달러(한화 약 5조10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그중 경매 판매 총액만 약 4조300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한 수치로 지난 7년 중 최대 실적이다. 이 기간 총 2만5085개의 작품이 낙찰됐으며 일대일 맞춤 판매인 프라이빗 세일에서는 영국에서 5억 파운드(한화 약 7843억4000만원), 미국에서 6억 달러(한화 약 8178억 원), 한국에서는 약 7469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크리스티 측은 "같은 기간 구매 고객 중 30%가 크리스티의 신규 고객으로 이중 34%가 밀레니얼 세대였다"면서 “전년 밀레니얼 신규 고객이 31%였으니 지속적인 증가세를 확인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