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반도체 한파'가 찾아온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체감 실적은 더 추울 전망이다.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축소는 확정적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 시장 수요 화가 주요 원인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12.6% 하락해 1344억달러(약 175조원)에 그칠 것으로 봤다. 내년에는 이보다 17% 떨어지면서 2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요 수익원으로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악화 우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은 대폭 하락했다. 올 3분기 D램 매출은 71억3000만달러로 전기 대비 34% 급감했다. 시장점유율 역시 하락했다. 메모리 반도체 매출 1위는 인텔에 자리를 내줬다. 비메모리 부문은 TSMC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설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 전망 역시 어두운 상황이다. 4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2조~3조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전 분기 기록한 5조1200억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년 동기 8조8400억원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주력인 반도체 사업이 부진하면서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이익은 6조9420억원에 머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진투자증권은 "부진한 시장 수요에도 불구 메모리 빗그로스는 회사 측 점유율 회복의지에 따라 두 자릿수 증가하겠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가격 출혈이 불가피해 평균판매가격(ASP) 하락폭은 더 깊어지고 손익도 악화하겠다"고 예상했다.
이어 "리지드 물량 증가로 전체 패널 출하량은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폭스콘 정저우 공장 파행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이에 아이폰용 플렉스 패널 출하 감소 영향으로 3분기 대비 이익 규모가 줄어들 것이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혹한기의 직격탄을 맞은 SK하이닉스는 업계 동반자이자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인텔의 행방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는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 하락세로 실적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올 4분기(10~12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대규모 적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는다. 에프앤가이드는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손실 컨센서스가 419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SK하이닉스는 지난 2012년 3분기 15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향후 실적을 좌우할 요소로 삼성전자의 4분기 '감산' 여부과 함께 인텔의 신규 DDR5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내년 투자 규모를 올해 대비 절반 이상 줄이고 저수익 제품을 중심으로 내년 1분기부터 감산에 나서겠단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수익성이 악화되더라도 재고가 소진되기를 견디면서 시장 수급이 정상화되도록 대응하겠단 전략이다.
올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은 14조원을 넘겼고 같은 기간 재고자산회전율은 지난해 3.2회에서 2.4회까지 떨어졌다. 재고자산회전율은 매출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기업의 경영 활동이 활발하다는 뜻이다. 반대인 경우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가 느리다.
재고 일수 역시 급격히 늘면서 올 4분기 말 약 40주까지 치솟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통상적인 재고 일수 80~90일의 3배 수준에 달한다.
문제는 재고물량 급증과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SK하이닉스가 감산 계획 시그널을 시장에 보낸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감산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단기 피해를 감수하고 차후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이른바 '치킨게임'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이달 초 테크데이에서 인위적인 감산은 고려치 않는다고 했는데 이 입장엔 변화가 없다"며 "단기적으로 수급 균형을 위한 인위적인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가 감산에 나서지 않는 이상 SK하이닉스의 감산이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증권가에서도 SK하이닉스의 주가 향방이 삼성전자의 감산 여부에 달렸다고 내다봤다.
다올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주가의 기폭제는 삼성전자의 감산 여부"라며 "이미 삼성전자를 제외한 메모리 업체는 재고를 줄이기 위해 설비투자(CAPEX)를 삭감하고 감산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메모리 업계 재고와 가격 하락세를 감안했을 때 삼성전자도 이르면 내년 1분기 이후 공급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4분기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가 있는 1월 하순에 감산 참여 여부에 따라 SK하이닉스의 주가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인텔이 DDR5 D램을 지원하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신제품 출시 일정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DDR5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에 최적화된 차세대 D램 규격이다.
전 세계 CPU 양대 산맥 중 한 곳인 인텔은 4세대 서버용 CPU '사파이어 래피즈'를 내년 1월 출시할 예정이다. 앞서 인텔은 지난해 4분기 DDR5를 지원하는 PC용 CPU '앨더레이크'를 선보였다. 하지만 서버용의 경우 수율 등의 문제로 출시 시기를 1년 가까이 연기한 끝에 지난달 초에 이르러 사내 행사를 통해 출시 시점을 확정했다.
인텔의 신제품 출시로 DDR5로의 D램 세대 전환이 본격화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회복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달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감산을 하지 않는 이유로 "내년 데이터센터 증설이 확대되고 DDR5 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도 D램 시장 회복에 올라타기 위해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고속 서버용 D램 'MCR DIMM’ '을 개발하면서 D램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인텔, 르네사스와 협업해 탄생한 이번 제품은 초당 동작 속도 8Gb(기가비트) 이상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4.8Gb인 서버용 DDR5 대비 속도가 80% 넘게 개선됐다.
증권가에서도 인텔의 신규 CPU 출시를 눈여겨보고 있다.
신영증권은 "2023년 DDR5를 지원하는 인텔, AMD의 신규 서버 CPU 출시로 서버향 DDR5 공급이 본격화할 전망"이라며 "현재 메모리 공급사는 신규 서버향 DDR5 관련 승인(퀄) 테스트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