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중국이 액정표시장치(LCD)에 이어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출하량 마저 2025년에는 한국을 앞설 것이라는 유비리서치의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다. 한국의 모든 언론이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저가 공세는 어쩔 수 없다는 수긍론도 있지만, 한국 업체 엔지니어들의 기술 유출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비판이 가장 많이 댓글로 달렸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중국이 매우 전략적이며 학습 능력 또한 엄청나게 뛰어난 국가라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한일 간 갈등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는 탈일본을 위한 소부장 제도 만들어졌고 국산화에 기치를 올렸다. 국가적인 지원으로 일부 재료들은 국산화에 성공했고 한국 기업들의 개발 능력과 양산 능력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과시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소부장 제도를 중국이 따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LCD 산업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는 과신속에 특허 관리와 부품소재 장비 업체들의 공급망 관리를 느슨하게 했다. 이 틈을 한국 패널 기업들이 비집어 들어가서 LCD 종주국인 일본 기업들을 앞설 수 있게 됐다.

중국 업체들이 LCD 생산 설비를 확보하고 기술력을 따라오기 시작하자, 이미 일본의 전철을 충분히 본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를 버리고 OLED로 방향을 빠르게 선회했다. 그리고 OLED에 특허 강화는 물론이고, 에코시스템을 도입하여 부품소재 장비 업체들이 경쟁 패널 업체들에게 동일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이들 부품소재 장비 업체들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을 사전에 봉쇄했다.

후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기술이 검증된 선발 업체들의 제품을 선호한다. 또한 기술 습득을 위해 선발 업체와 동일한 제품 또는 대등한 기술의 제품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국 부품소재 장비 업체들이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할 수 없이 거래처와 관련된 기술 정보를 조금이라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은 기술 습득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 않다. 이른바 한국식 소부장 제도로 국산화에 초집중하고 있다. 미·중 간에 발생한 무역 분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기술 습득과 제품 확보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최고의 텍스트가 한국식 소부장 제도다. 한국의 소부장 제도가 이른 시점에 주요 일본 제품을 국산화한 것이 매우 좋은 예가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정부 전략을 공개하지 않는다. 중국 디스플레이 협회는 철저히 자국 내 리서치 업체만을 활용해 정부 주도하에 고도의 디스플레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략 수립에 사용되는 비용이 연간 30~40억원 규모이다. 이 비용으로 한국과 일본, 대만의 디스플레이 산업 전후방을 철저히 조사하고 전략을 수립한다. 중국 정부는 OLED와 관련해 1단계 19개 제품 국산화를 추진해 왔으며, 2단계 전략을 한국식 소부장 제도를 표방해 발광재료의 핵심 재료인 도판트를 비롯한 모든 부품 소재 장비에 있어서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27년까지 OLED 관련 제품들의 국산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용 OLED가 중국의 저가 패널 공세에 의해 투자 중지는 물론이고 생산량마저 줄어들 수 있는 마당에, 한국의 소부장 업체들의 해외 수출 역시 조만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국 디스플레이 소부장 업체들은 당분간은 사업 축소가 불가피하겠지만, 소부장 제품 시장에서도 어차피 닥칠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에 대한 방어를 준비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 민주주의 국가 간의 경쟁 속에서는 진영 간 에코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국가간의 에코시스템이 이제는 그 국가의 핵심 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게임 체인저가 된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전후방 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은 XR 기기용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산업이다.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정밀 디스플레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웨이퍼에 구동 소자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반도체급 초정밀 디스플레이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의 반도체 분야에서는 소부장 업체들이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노광기를 비롯한 일부 장비들과 재료들은 아직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국내의 반도체 인프라는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롤 플레이어가 될 것이다.

이제는 R&D에 있어서도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이제까지는 디스플레이 업체에서 제공받는 기술과 정보로서 소부장 업체들이 사업을 준비했지만, XR과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산업이 이미 중국에 뒤처진 상황에서는 선제적인 개발과 정보 수집·분석이 필수 조건이다.

각 소부장 업체들은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입만 바라보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XR 산업이 어떻게 구성되고 발전할 것인지를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MI(market intelligence) 조직을 구축할 때이다. 더불어 ‘기술 개발’에만 치중해 있는 한국의 R&D 전략은 경쟁국의 전략과 산업 시스템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 수집과 분석을 통해 시장을 창출 할 수 있는 ‘시장 창출’형 ‘R&D전략’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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