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금리 5.25∼5.50% 동결했지만 “추가 인상 준비돼”
금통위, 경기 둔화vs 한미 금리차·가계부채 증가 딜레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경기 상황 등을 감안하면 한은은 금리를 쉽게 올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미 금리차가 여기서 더 벌어질 경우 금융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연준의 이번 금리 동결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내달 12일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금리 인상 압박을 덜었지만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경기 둔화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준이 매파적 스탠스를 보인데는 견고한 미국 경기 때문이지만 우리나라 상황은 다르다. 가계부채 증가와 물가때문에 고금리를 유지하기에는 소비 위축과 경제성장 둔화가 우려된다.
연준은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했지만 여전히 물가상승을 거론하며 추가 긴축을 시사했다. 최근 국제유가도 급등하면서 물가 상승 여력은 더 커졌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금리 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률을 연준 목표치인 2%까지 되돌리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며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는 금리를 추가로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예상보다 파월 발언이 매파적이라고 받아들이면서다. 달러는 곧바로 강세를 나타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1.3원 오른 1341.0원에 개장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4.48%로 하루 전 대비 13bp 오르기도 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9월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준이 긴축을 시사한데는 미국의 견고한 경제 성장세가 배경이다. 연준은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과거 6월 전망인 1.0%에서 2.1%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고금리가 지속되더라도 경기 기초체력이 받쳐준다는 뜻인데 우리나라 상황과 대비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9일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3.0%로 높인 반면 우리나라 전망치는 기존 1.5%를 유지했다.
이 처럼 불안한 경기·금융 상황 탓에 금통위는 금리를 따라 올리기도 어려운 처지다. 중국의 경기 회복세가 기대보다 느려 우리 기업 수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고금리가 지속되면 소비가 위축되고 가계부채 취약차주의 이자부담을 높여 금융 불안을 야기한다. 한은이 한미 금리차가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면서도 섣불리 금리를 올리기 어려운 이유다.
내달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후 연준이 11월이나 12월 FOMC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한미 금리차는 2.25%p로 역대 최대치가 된다. 이렇게 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는 외국인의 자금 유출 압력이 커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금리차가 너무 큰게 아니냐는 질문에 “금리차 자체 보다 미국 통화정책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금리차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다만 한은은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했다. 한은은 미국 통화정책기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하면서 금리를 올릴 명분도 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연착륙이 ‘내가 총재가 된 이유’라고까지 표현하며 가계부채 줄이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금통위원 전원 3.75% 가능성 열기 기조가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라며 “성장세는 미국보다 약해도 목표치를 넘는 물가 상황, 가계부채 증가 등을 고려할 때 한은 역시 고금리 장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