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史 5시리즈 첫 도전, 정통성과 트렌디의 만남
키드니그릴·트윈 헤드라인 유지..역동성 부각
운전자 위한 커브드 디스플레이..‘driving·fun’ 초점
실속도 앞지르는 체감속도, 휠이 착착 감기는 코너링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리미엄 비즈니스 세단 BMW 5시리즈가 ‘전기차’로 돌아온다. 모델명 ‘BMW i5 eDrive40(이하 i5)’. 5시리즈 탄생 50년 만의 새로운 역사이자 도전이다.
i5의 키포인트는 BMW가 50년 간 내연기관에서 고수한 정통성을 전혀 훼손하지 않은 채 전동화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전기차라고 해서 인위적으로 그릴을 막기 보다 BMW의 상징인 개방된 키드니 그릴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고유의 트윈 헤드라인을 측면의 마치 조각된 듯한 날렵한 디자인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킴으로써 차가 서 있어도 마치 달리는 듯한 이미지를 부여, BMW의 역동성과 전기차의 민첩성을 최대한 드러냈다.

BMW i5를 처음 만난 건 세계를 품은 태양의 수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였다. BMW그룹은 지난 9월 각국 언론과 인사들을 포르투갈로 초청, 리스본에 위치한 하얏트 BMW 뉴 5시리즈 및 BMW 뉴 i7 M70 글로벌 출시 행사를 개최했다.
강력한 태양빛 아래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i5는 그 자체만으로도 ‘눈부심’ 그 자체였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세단답게 국내 길거리에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델이지만, i5는 우아한 풍채에서부터 유독 ‘귀함’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 차 전기차야”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전기차인지 몰랐을 정도로 외관은 내연기관 스타일을 빼닮았다. 전기차라고 해서 심볼인 키드니 그릴을 인위적으로 막지도 않았고, 트윈 헤드라인도 기존 디자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눈에 익은 ‘그 곳’에 적용됐다.
혹자는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해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변하지 않은 부분이 BMW 충성고객이나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고객들의 소비욕구를 되레 자극하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전기차라고 해서 ‘키드니 그릴을 억지스럽게 막았다’고 상상해보자. 어쩌면 BMW의 고유명사인 ‘역동성’이란 단어는 전동화 시대에 더 이상 따라 붙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내부에 전동화향이 진동했다. 일체형 커브드 디스플레이, 버튼과 조작부가 거의 없는 매우 심플한 디자인의 센터콘솔과 센터페시아. 특히 운전자를 감싸는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BMW가 운전의 본질을 ‘드라이빙(driving)’과 ‘재미(fun)’에 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진다. 운전자는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드라이빙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여러 인포테인먼트 기능도 누릴 수 있다. 이를 테면 이전 모델 대비 더 커진 스크린으로 유튜브 및 실시간 스포츠 중계 등을 시청할 수 있고 게임도 가능하다. 컨트롤 패널과 센터 콘솔의 셀렉터 레버에는 햅틱 피드백이 적용돼 있었다.

또한 BMW 관계자가 강조한 도어의 인터렉티브 바는 단조로운 실내에 다양한 색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외관과 성능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시각적인 역동성을 부여한다. 시트는 비건 소재인 베간자를 사용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가죽 소재의 질감과 크게 다르지 않고 꽤 안락했다. i5에는 시트 외에도 ,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 스티어링 휠에 완전 비건 소재를 적용했다.
차체는 이전 모델 대비 더 길고 높아졌으며 또 넓어졌다. 길이 95㎜, 너비 30㎜, 높이가 35㎜ 증가했다. 앞뒤 축간 거리도 20㎜가 늘어나면서 실내 공간도 한층 더 여유로워졌다.

BMW그룹은 이날 신차 공개와 함께 참석자들을 상대로 시승 행사도 열었다. 제공된 시승 코스는 고속도로의 직선 구간과 바다와 산을 타는 곡선 구간이 무한 반복되는 3시간의 ‘모듬 코스’였다. 어떤 구간이든 맞춤 주행이 가능하고 장거리 승차감에 대한 자신감이 역력한 코스 구성이었다.

전원 버튼과 함께 웅장하게 퍼지는 웰컴 사운드, 두툼한 핸들에서 전달되는 BMW의 특유의 안정감은 낯선 도시, 낯선 차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운다. 그러나 이도 잠시,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힘차면서도 부드럽게 쓸려 나가는 묘한 이질감은 다시 적잖은 긴장감을 유발했다.
전반적으로 주행 속도가 낮고 양보가 습관인 포르투갈 운전자들의 주행 습관을 고려할 때 한국인의 질주 본능이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시속 40~50km도 100km로 느껴지는 엄청난 속도감은 시승이 끝날 때까지도 적응이 안됐다. 그만큼 치고 나가는 힘이 상당하다. 여기에 순간 순간 가속이 붙으면, 머잖아 곧 이륙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더 매력적인 건 코너링 구간이다. 급격한 곡선 구간에도 휠이 착착 감겨 들어간다. 전기차의 민첩성을 i5의 체구가 절묘하게 잡아주면서 자연스런 코너링을 유도했다. 마치 지면과 휠이 일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승차감은 동승석으로 이동해서 맘껏 느꼈다. 인상적인 건 흔히 전기차는 회생제동 시스템 때문에 운전자를 제외하곤 어지러움을 호소하기 마련인데, i5는 이런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날 함께 운전한 동승자는 브레이크 페달을 거의 밟지 않고 가속 페달과 회생제동으로만 속도를 조절했다.
다양한 구간 상 변속감이 큰 편이었지만, 탄탄한 서스펜션은 장거리 승차에 부담감을 줄여줬다. 가장 편안한 승차감은 동승자의 잠이 말해주는 거라던데 그런 점에서 i5의 승차감은 전기차 중 최상급이 아닐까 싶다.


차량 내부의 전동화 기능은 운행 중에 제대로 발휘됐다. 기본사양으로 제공되는 주행 보조 장치인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프로페셔널은 어댑티브 크루즈 콘트롤이 적용돼 시속 210km에서도 차간거리 유지와 차선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시승 중에는 210km까지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시속 100km의 완만한 곡선구간에서 야무지게 차선을 따라가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i5의 1회 충전거리는 477km에서 최대 582km. 국내에 들여오는 모델의 경우 최대 399km로 낮아졌지만, 내부 여러 전동화 기능과 속도감을 느끼며 달리기엔 충분한 거리로 예상된다. BMW는 i5 버전의 경우 최대 205kW 출력의 DC 고속 충전 스테이션에서 충전할 경우 10분 만에 최대 156km의 주행거리 확보가 가능하며, 맥스 레인지 기능을 통해 출력과 속도를 제한하고 편의 기능을 비활성화해 주행 거리를 최대 25%까지 늘릴 수 있다.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연기관 시대를 주도한 글로벌 메이커들이 위협을 받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는 요즘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말은 틀린 듯 하다. 정통성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의 트렌드와 적절히 타협한 산물, i5와 곧이어 공개될 i7만 보더라도 BMW가 전동화 시대에 왕좌를 내줄 일은 결코 없어 보인다.
포르투갈 리스본=이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