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금 손실의 45%를 받게 되니, 참 허무하네요.”
문제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자가 온라인 카페에서 한 말입니다. 앞으로 은행에서 ELS 같은 고난도 고위험 투자상품 가입은 예전 같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혼쭐나다시피 한 ELS 사태에서 은행들은 불완전 판매에 대한 책임으로 조단위 배상금을 물게 됐죠. 자기책임 원칙의 투자상품이지만 고객에게 제대로 정보를 알리지 않은 까닭입니다.
배상기준안을 설계한 금융당국자는 “ELS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 당국자는 현재 자리에 없고 은행도 파는 데에만 급급했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금융당국과 은행은 (이 사고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은 아니지만) ELS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ELS 사태는 학습 비용이 큰 사건으로 보입니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조단위 뭉칫돈이 증발했습니다. 올해 1∼7월 H지수 ELS 만기 도래 규모는 10조483억원, 손실액은 5조242억원(손실률 50% 기준)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은행 프라이빗 뱅커(PB)를 믿고 가입한 가입자의 ‘마상(마음의 상처)’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또 자기 재테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질타는 가입자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저금리 시대 남들보다 괜찮은 투자처를 찾아보려 했던 욕심의 대가, 타인의 추천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은행도 큰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예대차익 이외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은행 산업이 경쟁하던 시기, 은행들은 복잡한 상품을 너무 쉽게 판매했습니다. 가입자들이 홍콩 ELS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투자를 감행하도록 방치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평도 나옵니다.
평균 배상기준안 40%를 적용하면 은행권은 6개 주요 은행의 배상액이 1조9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과징금과 행정 제재는 여기서 별도 계산입니다. 앞으로 은행 창구는 복잡한 가능성이 얽힌 고난도 투자상품은 고객을 충분히 선별해 판매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융당국도 행정 실패를 인정했습니다. 당국이 면밀한 감독 행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여러 사태에 이어 재확인됐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감독 당국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제가 된 ELS는 2020~2021년 주로 판매된 상품이고 2022년 들어서야 이 업무를 맡게 된 금감원으로선 과거로 돌아가 상품 판매를 금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이 사태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감독자와 은행 경영자는 현재 업무 권역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벌어진 사고를 해결하는 쪽으로 행정력과 경영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고도 전했습니다.
은행은 이제 사람보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금융상품을 판매하려는 쪽으로 위험 관리를 하려 합니다. 영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이 인간의 실수 또는 불안전한 행동에서 비롯됐기 때문이죠. 일반 고객들은 앞으로 구조화된 고위험 투자상품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확인하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헤겔은 역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사건과 인물은 되풀이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 물줄기가 반복되는 것처럼 금융권도 사고와 해결방안 모색이라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배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금융권의 학습효과가 이렇게도 없을 수가 있나’라는 강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키코(KIKO) 사태부터 DLF 사태, 그리고 ELS 사태로 이어진 투자상품 손실 사태의 공통점은 이해 관계자들의 욕심과 금융당국의 무사안일주의가 한몫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몰랐다’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일반 고객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금융사와 금융당국 또한 자신들의 ‘학습 능력’과 점검 역량을 돌아보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