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산업·경제·금융·의료·교육 등 우리 삶에 맞닿은 모든 분야에 AI도입이 가속화하고 있다. 변화가 잦은 경영 환경 속 기업들도 처절한 혁신 없이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에 반도체·가전·이동통신·제조·IT(정보기술)서비스 등 전(全) 산업계가 ‘퀀텀점프’를 이뤄내려면 향후 AI 수요에 대한 전략과 선제적 대응이 중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급변하는 소비자 니즈와 매순간 호흡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AI 비즈니스 트렌드를 놓친다면 기업 간 경쟁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EBN은 [‘AI로 여는 미래혁신’]을 주제로 웨비나(온라인) 방식의 포럼을 갖고 분야별 [AI 혁신포럼] 시리즈를 통해 AI의 현주소와 미래를 조망, 우리 기업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2022년 11월 30일. 오픈AI가 ‘Chat GPT-3.5’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의 ‘빅스비’, 애플의 ‘시리’, 아마존의 ‘알렉사’ 등 음성으로 AI와 소통하던 시기에 텍스트 기반의 AI는 한편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듯 보였지만, 세상을 뒤바꾸며 대중에 ‘생성형 AI’를 각인시켰다.
오픈 AI의 ‘Chat GPT’ 등장으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생성형 AI 경쟁에 뛰어들었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참전하며 세계는 바야흐로 AI 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
■ AI 모델 파라미터 경쟁 저물다
초기 생성형 AI 경쟁은 LLM(Large language model, 거대언어모델)의 파라미터(parameter. 매개변수)로 요약된다.
파라미터는 LLM이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 연산할 수 있는 단위로 모델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Chat GPT 3.5 버전의 파라미터는 1750억 개였으며, 이후 공개된 모델의 파라미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 Chat GPT 최신 버전의 파라미터를 1조 개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구글의 AI 모델 ‘바드’의 초기 버전은 LLM LaMDA(Language Model for Dialogue Applications)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LaMDA는 1370억 개의 파라미터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기업의 LLM은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삼성전자 ‘가우스’ △LG AI 연구원 ‘엑사원’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와 삼성전자의 LLM 파라미터 수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LG AI 연구원의 ‘엑사원’ 파라미터는 3000억개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생성형 AI 경쟁이 격화되면서, 파라미터는 차별성이자 경쟁성으로 자리매김했고, 기업의 기밀로까지 변화했다.
하지만 파라미터가 클수록 비용에 대한 부담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각 기업의 LLM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경쟁은 효율성을 앞세운 SLM(Small Language Models, 소형언어모델)으로 전환됐다.
학계와 산업계에서 정한 규정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파라미터 수 300억개 미만을 SLM으로 분류하고 있다.
애플이 지난 4월 공개한 AI모델 ‘오픈ELM(OpenELM, Open-source Efficient Language Models)’도 SLM에 포함된다. 이 밖에도 MS의 ‘파이-3 미니(Phi-3 Mini)’와 구글의 ‘젬마(Gemma)’, 메타의 ‘라마3’ 등도 SLM으로 분류된다.
언어모델의 정착은 본격적인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졌다.

■ AI 연구 개발 넘어 상용 서비스 경쟁
오픈AI의 ‘Chat GPT’를 시작으로 구글, MS, 메타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이 AI 경쟁에 잇따라 참전하면서, 이제는 LLM 연구 개발을 넘어 사용자 확보를 위한 상용 서비스 경쟁이 본격화됐다.
2023년 상반기까지는 독자적 LLM 기반의 대화형 AI 서비스 경쟁이 치열했다. 더욱 빠르고, 정확한 답변을 만들어내기 위한 경쟁이 주를 이뤘다. 이는 높은 파라미터가 요구됐던 배경이기도 하다. 오픈AI가 지난해 2월10일 유료버전 ‘Chat GPT 플러스’를 출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는 대화형 AI를 넘어 보다 일상생활에 가까운 서비스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 ICT 기업들은 자사 서비스에 AI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로, 소비자들이 접하는 AI 서비스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MS의 대표적 서비스는 ‘코파일럿(Copilot)’이다. 코파일럿은 AI 비서로, 대화형 AI부터 PC 이용 전반에 걸쳐 사용자에게 도움을 준다. 특히 아웃룩, 팀즈, 엑셀, 파워포인트 등 작업에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엑셀 작업 시, 함수식을 외우지 않아도, 자연어를 통한 명령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구글도 지난달 16일 연례 개발자 회의 ‘구글 I/O 2024’를 통해 검색 서비스에 AI 모델 제미나이를 더한 ‘AI 오버뷰(AI overview)’를 선보였다. 이용자가 검색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요약해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외에도 AI를 이용한 이미지 생성, 작곡, 코딩 등 무수히 많은 분야에 대한 서비스 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쟁 속에 우리나라 기업들도 전자, 통신, 쇼핑, 검색 등 분야에서 AI 도입과 출시 행보를 이어가며 세계 시장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 세계 경쟁 격화 속 ‘AI 주권’의 대두
미국을 중심으로 AI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세계 곳곳에 침투하면서, 국가 고유의 역사와 문화, 사회 등을 반영한 ‘소버린 AI(Sovereign AI)’. 이른바 AI 주권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동해바다를 ‘east sea’가 아닌 ‘sea of japan’으로 표기되는 사태부터, AI 경쟁이 지속될수록 해외 기업에 대한 종속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러한 종속은 교육 등의 영향으로 고유문화의 상실과 편향적인 국가 변화 등 사회학적인 해석도 뒤따른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도 차츰 AI 산업 성장을 위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8월 24일 네이버가 공개한 초거대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는 말 그대로 한국 소버린 AI를 표방하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첫 공개 당시부터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과 법, 제도를 넘어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높은 이해도를 강조했다.
네이버는 이런 AI 철학 정립에만 그치지 않고 대화형 AI ‘클로바X’,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는 생성형 AI 광고 ‘클로바 포 애드’, AI 검색 서비스 ‘큐:’, AI 기반 음성 녹음 및 텍스트 변환, 요약을 돕는 ‘클로바 노트’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정보 취약성과 언어 번역 문제에 대한 한계를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하이퍼클로바X 공개 당시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 AI 기술 총괄은 “개인이, 우리가,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이 있고 똑같은 성능으로 만들어서는 고비용이 된다”며 “우리는 로컬라이즈된 전략이 필요하며, 이는 네이버가 할 수 있는 유니크한 전략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ICT 산업 성장의 한 축을 이끌었던 이동통신사들도 통신기업을 넘어 AI 기업 도약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올해 ‘글로벌 AI 컴퍼니’ 도약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출시한 AI 비서‘ 에이닷(A.)’은 누적 가입자 수 400만명을 돌파했고, 또 실시간 통화 녹음·요약, 통역 등이 가능한 ‘에이닷 전화’ 서비스는 이용자들에게 가장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도 미래 지향점을 AI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KT는 브랜드 슬로건으로 ‘KT, 당신과 미래 사이에’ 제시했다. 이는 기존 통신 역량에 IT와 AI를 결합한 AICT 컴퍼니로서의 새로운 비전과 포부를 담았다.
LG유플러스도 브랜드 슬로건을 ‘Growth Leading AX Company(AI 전환으로 고객의 성장을 이끄는 회사)’으로 정했다. 이 슬로건은 AX를 중심으로 혁신을 가속화하며, 이를 통해 고객의 성장을 주도하고 회사 스스로도 성장해 나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네이버가, 통신을 접목한 분야에서는 이통3사가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면 하드웨어 기반의 온디바이스(기기 내장형)에서는 삼성전자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17일 ‘삼성 갤럭시 언팩 2024’를 통해 스마트폰 ‘갤럭시 S24’ 시리즈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 최초로 온디바이스 AI인 ‘가우스’가 탑재됐다. 세계최초의 상용 AI 스마트폰의 데뷔였다.
신형 스마트폰 경쟁은 항상 칩셋과 카메라, 디자인 등이 부각됐지만, 삼성전자가 AI를 새로운 경쟁의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다.
‘갤럭시 S24’ 시리즈는 3개 언어의 번역과 메시지 톤 변화를 지원하는 ‘채팅 어시스트’와 ‘실시간 통역’ 등의 기능을 지원한다. 특히 실시간 통역 기능은 각종 매체를 통해 전파되며, 많은 소비자의 주목을 받았다.
기능 뿐만 아니라 판매량 확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S24 시리즈는 58.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세부 기종별로는 ‘갤럭시 S24 울트라’ 30.1%, ‘갤럭시 S24’ 16.8%, ‘갤럭시 S24 플러스’ 11.5% 순이다. ‘갤럭시 S24’ 시리즈 모델이 고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AI는 거부할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이 됐다. 다소 늦었던 출발에도 우리나라 역시 AI 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AI 산업은 여타 산업군의 발전과는 다르게 소수의 국가, 기업이 세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 하정우 네이버 퓨처AI센터장은 지난달 열린 ‘AI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AI 안전성에는 각 문화나 지역의 특징적인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