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경은 인간이 그어 놓은 경계다. 세계·국가·지역 권력이 등장하고 힘을 겨루는 선(line)이다. 최근의 국경은 단절에서 교류의 ‘접경공간(Contact Zone)’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반도·동북아 정세는 위태롭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평온하다. 1334㎞에 걸친 이 두 강은 오랜 세월 이곳의 생명들을 먹여 기르고 있다. 밤이면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네온사인이 가득한 중국, 무채색 북한이 극적으로 대비됐지만 아침이면 강에서 어김없이 생명이 피어난다. 6박7일간 2200㎞에 이르는 조중 국경 지역을 다녀온 이야기다.[편집자주]

[중국(장백현·백두산 천지)]=김남희] 일찍 일어났다. 새벽 5시다. 량강도 혜산시의 아침을 보고 싶어서다. 민낯을 보인 혜산시는 며칠간 보아온 북한 도시보다 가까웠다. 장백현에서 20미터 채 되지 않는 강을 건너면 혜산이다. 북한의 아침은 여느 도시처럼 템포가 빨랐다. 알 수 없는 내용의 방송이 도시를 깨웠고 개가 짖고 여름 제비가 날아들었다. 연기 나는 굴뚝과 재래식 공장 및 목재 창고가 보였다. 가끔 오가는 행인이 있었다. 평일 새벽 5~6시는 일상을 시작하기엔 이른 시간이긴 했다.
'에어컨 없는 도시'라는 강원도 태백처럼 혜산의 여름 기온은 비슷하다. 최고기온이 27℃ 가량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 중강진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털이 두툼한 풍산개도 이쪽 지역 출신이다. 개마고원 중소 도시인 혜산은 인구 20만명이 살고 있다.
중국 장백현과 좁은 압록강을 사이에 뒀는데 압록강이 개울처럼 보일 정도라 탈북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가장 북쪽까지 도달한 지역이라고도 한다. 북한 명소인 혜산은 백두산 관광 관문 중 하나다.

혜산시는 다른 북한 도시보다 집과 건물이 다채로웠다. 저층·고층 아파트, 일반 살림집, 재래식 공장과 건설 현장 등 타도시보다 비교적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북한 특유의 '다세대 주택을 하모니카 주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모니카집이 많이 보였다.
현지인에 따르면 혜산시는 타도시에 비해 먹고 살만한 도시다. 중국과 맞닿아 있는 국경지역이어서 무역을 위한 크고 작은 무역회사들이 밀집해 있고 비공식적인 거래가 왕성하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영향으로 자연히 시장이 활발하게 운영되는데 2019년 기준 6개의 장마당(북한의 민간 시장)이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당에 충성'이란 말이 나도는데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기서 '당'은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아니라 이 장마당을 뜻한다는 얘기도 있다. 시장을 통해 먹고 산다는 얘길까.
1990년대 인류 최대의 대기근 '고난의 행군'을 들어봤을 것이다. 북한 아사자가 수십만명에 달했다고 추정되는 비극적인 시기다. 이후 북한 인민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사라져가던 구시대 농민시장을 토대로 먹고 살길을 만들었다. 오늘날 장마당이다.
장마당은 북한의 자본가인 '돈주(개인형 사채업자, 최근엔 기업형 사채업자, 중국인 돈주도 생겨났다)'를 키워내는 등, 북한식 자본주의를 탄생시키고 발전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북한 정부는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위하여 틈만 나면 장마당을 폐쇄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북한의 배급제로 인민들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장마당은 서서히 사회주의 배급제의 대체제로 굳어가는 모습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혜산 출신 탈북민 기준 가장 가난한 사람은 47세 여성으로 월 가구 소득이 한국 돈 1만3740원, 가장 잘 버는 사람은 35세 여성이었다. 잘 버는 사람은 장사만으로 월 82만원을 벌었다.
북한 인민들은 굶어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살림살이를 파는 등 바로 장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통일평화연구원은 대량의 중국·러시아의 물자가 들어올 수 있는 나선시, 신의주시, 평성시, 평양시 정도가 비교적 잘 사는 편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돈주'는 북한 각 지역 크고 작은 형태의 사채업자다. 장마당과 북한 화폐가치 변화, 코로나 펜데믹 영향으로 급전이 다급한 인민들이 늘어나면서 번성했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와 영국 산업혁명 등 세계 문명이 급진적으로 꽃 필 때는 금융도 함께 발전했다.
돈주는 이제 북한 경제에 빠질 수 없는 역할자다. 2010년부터 돈주는 북한식당, 목욕탕, 수영장, 미용실, 이발소 등의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의 종자돈과 자본금을 대는 사업 참여자로도 성장 중이다. 1990년대 말 주식회사법을 제정한 북한은 나진, 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와 남포, 원산 등에서 북한식 주식회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혜산시를 한참 바라보고 나니 떠나야할 시간이다. 오늘은 백두산 천지를 만나는 날이다. 지금 있는 장백현에서 출발해 혜산시, 삼지연,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과거 중국 관광객들의 대표적 북한 육로관광 루트 중 하나다. 코로나 이후 통제됐지만 북한이 중국인 육로 관광을 다시 연다면 혜산시 등이 잇달아 관광 상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들린다.
마치 지리산 관광으로 먹고 사는 함양과 산청, 구례와 같은 느낌이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세계적인 명산 백두산관광문화지구를 훌륭히 일떠세워 세계 여러 나라 사람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들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참고로 이 지역은 농심 백산수의 수원지다. 백두산 지하 암반수를 여과해 백산수를 만든다. 백두산 인근에서 이 물을 마시니 맛있게 느껴졌다.

드디어 백두산을 오른다. 백두산은 해발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민족 영산' 백두산은 지금도 화산 활동을 하고 있는 활화산이다. 백두산은 고생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최대 5억4000만년 전부터 화산활동을 하며 형성된 백두산은 동북아시아와 만주벌판, 한반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산증인인 셈이다.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약화되어 지금의 산세를 이루었다. 16개의 봉우리들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학계에 따르면 백두산은 고려시대인 서기 946년 대폭발했다. 화산재는 한반도를 넘어 일본까지 날아갔다. 일본 역사서에 "하얀 재가 눈처럼 내렸다",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가 났다" 등의 기록이 있다.
백두산 천지를 보려면 '날씨'가 일을 다 해야 한다. 전형적인 고산기후라 날씨가 시시각각 변화무쌍해서다. 기자는 첫 지리산행 때 천왕봉 붉은 일출을 볼 수 있어 '삼대가 덕을 쌓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도 2번 더 봤다. 백두산을 오를 때도 그 행운이 따라와 줄까.
이번 백두산은 스케일이 다르다. 만주와 한반도 사이에 있는 백두산이다. 삼대가 아니라 오대 이상은 덕을 쌓아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변덕쟁이 날씨로 유명하다. 일행들은 백두산을 가는 내내 하늘을 쳐다봤다.
맑고 선명한 백두산 천지를 조망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이 지역의 특성 때문이다. 남쪽의 더운 공기와 몽골지방에서 오는 찬 공기가 마주치면서 천지에는 안개가 많이 낀다.
7~8월에 안개가 끼는 날수는 33일 가량 되며(60일 중 절반이 안개 날씨), 구름이 많고 천둥현상이 잦으며 주로 눈·비를 동반하는 편이다. 일행 중 한 명이 "어젯밤 이 지역에 비가 왔기 때문에 다행히 오늘 하늘이 구름 없는 맑은 날"이라고 했다. 이에 가이드는 "백두산 날씨는 현장에 가봐야 압니다."라고 응수했다. 기자는 백두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됐다.
한국인들이 가고 싶은 꿈의 여행지 중 하나답게 늘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을 오른다. 중국인도 대단히 많다. 이날도 어김없이 많은 관광객이 있었는데 평일이라 그나마 사람이 적은 날이란다. 백두산행을 위한 루트는 3개다. 서파, 북파, 남파(동파도 있다).
각 코스마다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서파로 오르게 됐다. 지프차를 타고 쉽게 오를 수 있는 북파와 달리 서파는 버스에 내려 낮고 평탄한 계단만 오르면 볼 수 있다. 입장료는 서파의 경우 214위안(한화 약 4만758원) 수준. 입장권이 QR코드화 돼 있다.
일행들은 백두산 입구에서 전용차량을 2번 타고 30~40분 정도 이동했다. 하차 지점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천지가 보인단다. 계단은 1444개(1442개란 얘기도 있다)다.
백두산은 독특하게도 만주와 한반도를 동시에 호령하는 산이다. 그렇다보니 사연도 많다. 북한은 1948년 정권 수립 이후 중국과 수차례에 걸쳐 국경조약을 맺었다. 이 중 하나가 1962년 김일성 북한 주석과 저우언라이(주은래) 중국 총리가 서명한 '조중변계조약'이다.

이후 2년간 국경 조사를 통해 1964년 베이징에서 양국이 '조중변계의정서'를 체결했다. 이후 백두산의 주인이 둘로 쪼개졌다. 북한과 중국은 백두산과 천지의 소유권을 나눴다. 백두산의 남동부는 북한에, 북서부는 중국에 귀속됐다. 이를 나누는 게 37호 경계비다. 중국과 북한을 나누는 천지의 54.5%는 북한의, 45.5%는 중국의 관할이 됐다. '조중변계조약'은 비밀조약이었기에 일부에서는 조약의 유효성에 논란을 제기한다. 조약법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여름의 백두산은 다양한 야생화로 아름답다. 새와 다람쥐, 산토끼도 보인다. 천지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은 차다 못해 손이 아리다. 계곡물조차 영험해 보여 신기했다.
산을 오르면서 풍광을 둘러봤다. 한반도의 지붕인 개마고원 북부에 위치했기에 용암 대지와 평원이 겹겹이 보였다. 지리산보다 산세가 험준한 곳이 더 많고 높은 산림지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적, 역사적 가치가 높기에 천연기념물 군락으로 지정해야할 정도다.

학자들은 남한 주도의 통일이 된다면 시베리아호랑이나 아무르표범 같은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대형 동식물종 복원사업도 가능하다고 본다. 중국은 백두산 인근과 훈춘 등지에서 호랑이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중국 당국은 야생 호랑이를 주의하라고 했다)
1444개의 계단을 올라 마주한 백두산 천지는 이 세상 차원이 아닌 듯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구글과 블로그엔 수많은 천지 사진이 올라와 있지만 실제 보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천지를 보면 없던 애국심과 민족 사랑이 솟아날 법도 했다. 해발 4158m 스위스 융프라우는 웅장하고 광대하기는 했지만 백두산만큼 신령스럽고 영검한 기운을 주지는 못했다. 한반도, 한민족을 지켜주는 민족의 산. 화산 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칼데라호 천지.

눈이 많이 내려 머리가 하얗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백두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도 있고, 백번 올라가서 단 두 번만 볼 수 있기에 백두산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맑은 날이 드물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천지를 보게 되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아줘서 고맙다. 얼굴이란 단어는 정신(얼, 영혼)이 담기는 그릇이라고 했다. 얼이란 단어가 천지의 모습에서 잉태됐을 것만 같았다. 신비한 분위기나 고유한 정체성을 뜻하는 '아우라'의 원천이 천지 아닐까.
천지를 보는 내내 생각이 멈췄다. 신성하고 고결하다는 감각만이 일어났다. 깊은 색감과 광활한 크기,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깊이에 태양빛이 천지를 관통하지 못할 것 같다. 자연이 베푼 은혜로 탄생한 백두산 천지를 한반도의 '푸른 눈'으로 부르고 싶다. 중국인들 틈에 한국인들이 섞여 모두가 천지를 보겠노라고 긴 시간을 버틴 시간을 충분히 감내할 만 했다. 다시 또 천지를 보러 올 것만 같다.

천지의 수면은 해발 2257m, 면적은 9.165 k㎡,둘레 14.4 km, 평균 깊이 213m,최대 수심은 384 m다. 수량(水量)은 19억 5500만m³로 한반도 뿐 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가장 깊은 호수이다.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흑수(黑水)라는 별칭이 있다. 유네스코는 올해 3월 백두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새롭게 인증했다.
북한 생물학자 김리태에 따르면, 1960년 7월 30일 북한 과학자들이 산천어(표준어: 곤들매기)와 붕어를 천지에 풀어 넣었다. 2014년부터 빙어를 서식시키는 사업을 하여 2018년 성공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한 바 있다. 천지에서 호수 괴물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있으나 입증된 적은 없다.
하지만 중국 당국에선 천지 괴물 사진을 제대로 찍으면 한국 돈 수천만원 수준의 포상금을 준다고 했단다. 흥미진진한 당국 정책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에도 괴물이 산다고 했었다. 괴물 열풍이 불어 괴물 사냥에 나선 사냥꾼들이 진을 쳤다고 들었다.
넓고 신성한 분위기의 천지에서 정말 괴물이 고개를 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천지는 비현실적인 SF 영화 한 장면처럼 가슴을 타격했다. 뇌리에 각인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2탄이 천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지길.
BBC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2007년 이후 남한에 3차례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를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핵실험 등으로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무산됐다. 그래도 남북은 재회했다. 2018년 9월 20일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하며 백두산을 올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김영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김 위원장이 핵을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표현을 누누이 썼다”고 했다. 핵을 보유한 북한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안보리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다.
백두산이 '죽지 않은' 화산이란 점도 인상적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수년전부터 백두산 돌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백두산 지하에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언제든 다시 대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인이라면 여행 버킷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꿈의 여행지, 백두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자부심이 들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애국가의 첫 구절에서 시작되는 백두산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다.
따지고 보면 백두산이 개방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을 경유해 백두산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의 시작점이다. 백두산부터 지리산(智異山)까지 이르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로 뻗어나갔다. 전쟁 이후 인간은 휴전선을 그어놓았지만 백두대간 산줄기는 자르지 못했다.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상징하는 장소,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기리는 성소인 백두산. 예로부터 한민족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고, 환웅이 신시(神市)를 열고 단군이 태어난 성지(聖地). 한반도의 의미와 역사의 산증인.
백두산에서는 '백두산은 한국의 산'이라는 식의 정치적 표현을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관광객들은 중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밝은 얼굴로 천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생 죽기 전 천지를 보기 위해 이곳까지 온 백발 어르신들, 환자들도 있었다. 남파, 북파 코스도 제각각 아름다워 찬사가 튀어나오는 루트란다. 6~9월은 백두산에 오를 수 있는 최적기다. 천지의 눈이 녹아 지금처럼 푸르고 맑아서다.
오만가지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에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다. 천지 호수의 괴물을 찍기 위해 일주일 넘게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등반로에서 중국 학생들이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내렸고 아기를 안고 천지를 향하는 젊은 부부도 보였다.
여행업계 풍월에 따르면 조선 중기 두 선비는 량강도로 귀양을 가게 됐다. 량강도는 환경이 척박해 유배지로 유명하다.
이들은 "백두산 구경을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귀양 온 지 사나흘 만에 바로 백두산 유람에 나선다.
귀양자 신분으로 하루 수십 리를 걸어 며칠 만에 백두산에 도착한 이들은 “한나절 동안 두루 구경을 했어도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천지 풍경에 넋을 잃었단다.
과장이 아니라 백두산에 왔다는 사실 만으로 감격과 성취감, '국뽕'이 차올랐다.
서파 하산 길도 전용 버스를 2번 타야 한다. 그리고 생태숲으로 이어진 등산로로 가볍게 산책할 수 있다. 녹음이 짙은 숲에서 백두산 기운이 가득한 삼림욕을 했다.
화산 활동의 유산인 금강대협곡은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린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계곡 형태다.
용암이 분출하면서 생긴 200m 깊이의 협곡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화산재가 일본까지 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용암이 한반도를 덮쳤을까. 백두산은 한반도 고산화원이기도 하다. 수천수만가지 야생화와 고목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생명의 숲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한반도의 높은 산 1~50위는 모두 북한에 있고, 그 중에서도 개마고원에 집중돼 있다. 한라산은 한반도가 아닌 제주도에 속해 있어 순위에 들지 않는단다.
게다가 개마고원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한라산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개마고원의 높은 산들이 한반도를 보호해준 장벽이었던 셈이다. 한반도의 최고봉인 백두산을 필두로 관모봉(2541m)·북수백산(2522m )·차일봉(2505m)·백산(2476m)·남포태산 2433m) 등 2000m 이상 높은 산들이 수십 곳 있다.

흥미롭게도 백두산 근처의 개마고원에서는 그렇게 높은 산들도 마치 언덕처럼 낮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평균고도가 높아서다. 그래서 낮게 깔린 구름을 자주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산악지형이 알프스 고원과 유사해 산악열차를 깔거나 트레킹의 관광명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울창한 침엽수 산림은 매력적인 원시림이다. 개마고원 위쪽으로는 수목 한계선을 넘기 때문에 삼림 대신 광활한 관목지대가 펼쳐진다.
통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북한의 자산을 무엇보다 지정학적 가치에 중점을 둔다. 특히 개마고원은 위치적으로 한반도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제공한다. 군사적으로 개마고원은 만주를 내려다보는 위치로 북방세력을 막는 천혜의 방어막이 됐다. 개마고원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을 마주보고 있고, 북한의 동해는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횃대'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요충지의 가치, 그게 북한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동안 북한의 ‘지정학적 요충 이론’을 유달리 많이 강조하는 이유다. 북한이 ‘지정학적 행운’을 지속하며 ‘전략국가’로 남을 수 있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여기에 더해 경제노선까지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이 지정학적 지위와 핵 무력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까.
백두산은 아름다움과 감탄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북한, 우리 한국의 미래, 그리고 주변 대국과의 관계로까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백두산이 이 한반도를 지켜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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