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월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출처=연합]
중국을 방문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월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출처=연합]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2심 무죄 선고 이후 처음 택한 해외 출장지는 미국도 유럽도 아닌 중국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0년만의 회동을 포함해 샤오미와 BYD를 차례로 방문한 이번 방중은 단순한 사업 점검을 넘어,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진행되는 고도의 전략으로 읽힌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발전포럼(CDF)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비슷한 시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재계의 두 총수가 보여준 상반된 장면이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부문 수장을 대동하고 샤오미, BYD 등 중국 내 주요 전기차 기업을 연이어 방문했다. 삼성의 핵심 전장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실무 중심 행보로 풀이된다. 비공개로 진행된 중국 기업 최고경영진 회동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최한 글로벌 CEO 회동에 참석한 모습 [출처=연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최한 글로벌 CEO 회동에 참석한 모습 [출처=연합]

강력한 인상을 남긴 건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일이다. 이날 회견에는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시진핑 옆에 자리한 장면은 여타 기업들이 미국을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맞에 맞추는 것과는 다른 행보로 분석했다. 특히 시 주석이 “중국은 외국 기업에 이상적인 투자처”라며 외자 유치를 촉진하는 시점이라 관심이 증폭됐다.

반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현대차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투자(4년간 210억 달러)를 발표했다. 자동차부터 제철소까지 수직 계열화된 일괄 생산 체계를 미국 내에 구축하겠다는 선언으로 단순한 투자 유치를 넘어 정치-산업 연계 전략을 보여줬다.

이는 미국 내 공급망을 자국화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회사”라며 “관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선물을 내밀었고 정 회장은 “미국 산업의 미래 파트너가 되겠다”고 화답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 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백악관 유튜브 캡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3월 24일(현지 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백악관 유튜브 캡처]

현대차는 중국 시장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난해 중국 시장 판매량은 15만대 수준으로 급감했고 올해 상하이 모터쇼에도 불참한다. ‘중국에서 철수하고 미국에 뿌리를 내린다’는 메시지가 미국 정치권과 산업계에 명확히 전달됐다. 결과적으로 관세 방어는 물론 미국 내 톱티어 기업으로의 자리매김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와 대조적으로 삼성은 시진핑과의 회동을 비롯한 친중 행보로 미국의 무역 정책 타깃이 될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 간 관세전쟁이 다시 고조되는 시점이기 때문.

삼성에게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전기차 전장사업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부문에서 중국은 여전히 핵심 수요처다. 지난해 대중국 수출액은 64조원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했으며 미국(61조원)을 능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핵심 산업에 대해 25% 수준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그런 시점에 시진핑과 “중국에선 외국 기업도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은 미국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미국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며 핵심 기술 파트너로 인식되는 반면 삼성은 아직 엔비디아와의 협력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삼성전자 역시 위기감을 인식한 듯 최근 미국 백악관 로비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지난달 17일 트럼프의 최측근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의 딸이 소속된 로비회사 ‘콘티넨털 스트래티지’와 계약했다.

이같은 북미 대관 라인 보강은 바이든 정부로부터 약속받은 47억 달러의 반도체 보조금이 트럼프 집권 시 무효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삼성도 현대차 이상의 대미 투자안을 준비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회장의 중국행은 단기적 실익을 노린 사업적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삼성의 전략은 미·중 디커플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트럼프의 칼날이 중국을 향하고 있는 지금 삼성은 기술력 외에도 글로벌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즉생의 외침에서 보여지듯 트럼프 2기 취임 이후 글로벌 시장 환경은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터"라며 "기업들도 생존을 위한 글로벌 전략과 방향성을 다듬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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