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창걸 명예회장. [출처=고려아연]
고(故) 최창걸 명예회장. [출처=고려아연]

"나는 혁신이나 개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개혁보다는 변화가 중요하다."

고(故) 최창걸 명예회장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대한민국의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의 비철금속 기업으로 고속 성장시킨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경영인이다. 그는 스스로 강조했듯 거창한 혁신보다 하루하루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기반으로 기업을 키워냈다.

1941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아연 초대 회장 고(故) 최기호 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이어 미국 콜롬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1974년 고려아연 창립을 주도한 그는 부친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자원 빈국 한국에서 비철제련업을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제련업을 담당하게 된 그는 자금 조달이라는 난관에 맞닥뜨렸다.

국내에서는 국민투자기금과 산업은행에서 자금을 빌렸고, 해외에서는 세계은행 산하 IFC(국제금융공사)를 설득했다. IFC가 7000만 달러가 필요하다 했지만 그는 5000만 달러로 가능하다고 주장, 직접 구매·건설 방식을 채택해 결국 4,500만 달러로 공사를 완성했다.

■세계 최고 제련소 건설

1978년 온산 비철단지에 제련소가 세워졌으나 시운전과 정상화까지 2년이 걸렸다. 경험이 부족했지만 그는 경영관리 체계를 정비하며 빠른 정상화를 이끌었다. 이후 그는 최신 기술과 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대형 제련소 건설을 추진했고, 1980년대부터 기술연구소 설립, 생산시설 확장, 아연괴 LME 등록, 연제련공장 착공 등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을 세워 그룹 기반을 넓혔고, 1990년 기업공개를 추진해 투명경영 기반을 마련했다.

1992년 회장에 오른 그는 ‘원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신조 아래 글로벌 사업을 확장했다. 아연·연 제련 공장 증설, 호주 SMC 제련소 설립, DRS 공법 도입, 퓨머 공법 적용 등으로 고려아연을 세계 1위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신중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과감한 투자와 모험을 택하는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친환경 제련과 기술개발

최 명예회장은 제련산업을 공해산업이 아닌 친환경사업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아연 잔재를 재처리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기술을 상용화했고, 산업 폐기물에서 귀금속을 회수하는 ‘자원 리싸이클링’ 사업을 적극 전개했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은 연간 100만 톤이 넘는 원료를 제련하며 금·은·인듐 등 희소금속을 회수,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 톤에서 65만 톤, 매출은 114억 원에서 12조 원, 시가총액은 최대 20조 원에 육박하는 성과로 성장했다.

고(故) 최창걸 명예회장. [출처=고려아연]
고(故) 최창걸 명예회장. [출처=고려아연]

■인재 중시와 노사 화합

그는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장학사업과 임직원 해외연수를 꾸준히 시행했고, ‘덕장’의 리더십으로 노사 상생의 문화를 만들었다. "고려아연은 임직원 모두의 것"이라는 철학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38년 무분규,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IMF와 금융위기 때도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단행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배움의 가치를 강조한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사회공헌에도 앞장섰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복지 지원과 장학사업을 이어갔다. 대한적십자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과 협력했고, ‘임직원 기본급 1% 기부 운동’과 매칭그랜트를 도입했다.

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등록했으며, 부인 유중근 이사장과 아들 최윤범 회장도 함께 가입해 ‘패밀리 아너’로 기록됐다. 이런 공로로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최 명예회장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유중근 이사장과 결혼해 2남1녀를  장남 최윤범이 고려아연 회장을 맡고 있다. 2002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에도 기술 개발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힘썼으며, 친환경 제련소 건설과 사회적 책임 실현에 평생을 바친 기업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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