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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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북한의 권력 언어가 ‘신문’을 통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 연구가 나왔다. 

이용철 박사(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21기 졸업·인하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TBS 기자)는 최근 발표한 논문 「김정은 시대 『로동신문』 프레임 변화 연구」 에서 북한의 공식 담론이 정치적 사건과 체제 위기에 따라 어떻게 재편됐는지를 계량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로동신문』의 사설·논설·정론 2388건을 분석, 김정은 집권 12년간 북한이 어떤 언어로 통치의 방향을 제시해왔는지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체제 강화’가 절반 차지… 지도자 중심 통치의 언어화

이 연구에 따르면 『로동신문』의 담론은 7가지 핵심 프레임으로 구분된다. 그중 ‘체제 강화’ 프레임이 49.7% 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최고지도자 우상화, 당 결정의 절대화, 사상 통일 등을 강조하는 기사들로 구성된다.

뒤이어 ‘사회 관리’(21.6%), ‘자력 자강’(18.5%)이 청년 동원, 교육, 지방경제 활성화 등 사회 내부 결속 담론을 이끌었으며, ‘선군 과학’(6.3%), ‘대외 관계’(2.3%), ‘대남 관계’(0.8%), ‘인민건강’(0.7%)은 주변적 위치에 머물렀다.

이 박사는 “북한의 신문은 단순한 정보 매체가 아니라, 최고 권력의 통치 명령이 언어로 재현되는 정치 문서”라고 평가했다.

핵실험·숙청·팬데믹… ‘사건이 곧 담론을 바꾼다’

논문은 김정은 정권의 주요 사건이 어떻게 담론 구조를 흔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했다. 2012년 집권 초기에는 ‘체제 강화’ 비중이 61.9%로 정점에 달하며 지도자 권위 확립에 집중했다.

2013년 3차 핵실험과 병진노선 이후에는 ‘선군 과학’이 17.5%로 급등했고, 2014년 장성택 숙청 직후에는 ‘체제 강화’가 줄고 대신 ‘사회 관리’와 ‘자력 자강’이 동반 상승했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체제 강화’가 다시 59.1%로 급증, 방역보다 사상 결속을 우선한 통치 전략이 드러났다.

‘강경 통제형 자력갱생’으로 진화한 북한 담론

이용철 박사는 최근 ‘체제 강화’와 ‘자력 자강’이 동시에 상승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과거 상반 관계였던 두 프레임이 함께 확장된 것은 '통제를 전제한 자립', 즉 ‘강경 통제형 자력갱생’ 의 노선이 공식화된 신호라는 해석이다. 이는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집중 통치를 강화하는 김정은식 생존 모델로, 국가의 자율성과 주민의 자율성을 철저히 분리하는 담론 전략으로 평가된다.

외교·대남 메시지의 변주… 러시아로 시선 이동

‘대외 관계’ 프레임은 비중은 낮지만 내용 변화는 두드러진다. 2024년 들어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적극 부각시키며, 지정학적 노선의 중심을 중국에서 러시아로 옮기는 흐름을 보였다.

대남 관계에서는 2023년 말 '동족' 표현을 공식 폐기하고, 대한민국을 “적대적 주적”으로 규정했다. 이 박사는 이를 두고 “남북관계는 이제 화해의 언어가 아닌 단절의 언어로 재편됐다”고 해석했다.

“신문은 체제의 거울”… 담론으로 읽는 북한의 생존 공식

이 연구는 『로동신문』의 담론 변화가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정권의 생존 전략을 반영하는 ‘정치적 센서’ 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 박사는 “김정은 체제는 위기 때마다 언어를 바꿔 체제 균열을 봉합해왔다”며 “『로동신문』은 북한의 정책 우선순위와 권력 구조 변화를 읽는 핵심 창(窓)”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신문은 단순한 보도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언어, 통치의 지침, 그리고 체제 생존의 기록이다.김정은 시대의 『로동신문』을 읽는 일은 곧 북한의 미래를 해독하는 일이라는 점을, 이용철 박사의 연구는 묵직하게 일깨워준다.

이용철 북한대 박사는 "나의 논문 ‘김정은 시대 《로동신문》프레임 변화 연구’는 장기적 전수조사와 귀납적 방법을 통해 정책·담론의 역동성을 밝혀낸 뜻 깊은 성과였다"면서 "사설·논설·정론을 분석하며 북한 공식 미디어의 실질적 변화와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출한 과정에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기초 연구가 후배 연구자들에게 북한 체제 심층 분석과 후속 연구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출처= 이용철]
[출처= 이용철]

   논문 저자: 이용철 TBS 기자. 인하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학력 : 북한대학원대학교 사회문화언론 박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수상: 2023년 한국기자협회 제390회 이달의 기자상 경제보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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