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C조감도[출처= 현대차그룹]
GBC조감도[출처= 현대차그룹]

서울 삼성동 현대자동차그룹 신사옥 GBC(글로벌비즈니스센터) 공사가 착공 5년이 지나도록 설계 변경과 인허가 지연에 발이 묶였다. 공정률이 한 자릿수에 머문 탓에 시공사 현대건설은 공정도 실적도 제자리인 현장을 최소 인력·장비와 현장 유지만 이어가는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본체 공사가 사실상 멈춘 사이 주변 공공기여 시설 공사만 상대적으로 먼저 진행되는 상황까지 초래되며, 현대건설의 재무와 자원 운용 전반을 잠식하는 '잠자는 공사'로 굳어지고 있다.

GBC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국내 사업 중에서도 손꼽히는 상징 사업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1조7922억원 규모로,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디에이치 클래스트'(3조9319억원), 가양동 CJ부지 개발(1조6267억원) 등 대형 현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그 중에서도 GBC는 상징성과 수익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공정률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절대적이다.

그러나 공사 현실은 정반대다. 착공 5년이 지났지만 GBC 공정률은 7%로, 여전히 제자리다. GBC 기본도급액 1조7922억원 중 완성공사는 1311억원에 불과하다. 초대형 현장이 '잠자는 공사' 상태에 놓이면서 실적·효율·자원배분에 부담만 키우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PKG-1의 공정률이 70%대, 디에이치 클래스트는 공정률 20%대까지 올라 800억원대 공사 인식이 이뤄진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GBC에서는 공정률이 오르지 않아 실적 인식이 사실상 멈춰 있고, 시공사는 최소 인력과 가설시설을 유지하는 데 비용만 치르고 있다. 내부에서는 "돈은 나가지만 실적은 안 생기는 현장"이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GBC의 장기 정체는 현대건설에 재무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우선 매출 인식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대형 프로젝트임에도 실적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회사는 공정률에 비례해 매출을 인식하는데, GBC 공정률이 7%에 묶이면서 전체 도급액 1조7922억원 가운데 1조6612억원이 '미인식 잔액'으로 남아 있다. 단순한 공기 지연을 넘어 매출·영업이익에 반영되지 않는 잠재 매출이 장기간 묶여 있는 구조로, 분기 실적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반면 비용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현장 폐쇄가 불가능한 탓에 안전관리·감리·가설물 유지 등 필수 비용이 고정비 형태로 이어지고, 대형 사업 특성상 배치된 장비와 인력도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회계상 원가는 발생하지만 매출이 쌓이지 않아 수익성 저하 압력이 커지고, 장기간 이어질 경우 영업이익률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같은 비효율은 현대건설 재무상태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대건설의 미청구공사(계약자산)는 올해 3분기 기준 4조7695억원으로 전기말 대비 846억원 늘었지만, 공정률이 7%에 머문 GBC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반면 GBC의 계약잔액은 1조6612억원으로 대부분이 매출로 전환되지 못한 채 남아 있어 자산이 실질적으로 회전되지 않는 구조가 확대되고 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주잔고가 약 96조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대형 프로젝트 하나가 멈춰 선 데 따른 자원 효율 저하가 더 크게 부각된다.

또한 공사선수금 등 계약부채는 약 2조7188억원, 공사선수금은 1조2822억원에 달하지만, GBC처럼 공정이 정체된 현장은 선수금이 장기간 수익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부담이 커진다. 이로 인해 자산회전율과 ROE·ROA 같은 수익성 지표에도 부정적 신호가 반영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GBC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가 멈추면 자원 배분의 효율도 떨어진다. 현대건설은 대형 현장에 우선적으로 인력·장비·관리 자원을 묶어두는 구조인데, GBC 정체로 이들 자원이 다른 고수익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며 기회비용이 확대된다. 단순한 공기 지연이 아니라 회사 전체 자원 운영 효율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비용이 누적되는 셈이다. 시장에서도 부담은 커진다. 수주잔고 상 GBC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상징 프로젝트임에도 실적 반영이 지연되면서 IR·투자자 관점에서는 '대형 잠재 매출이 장기간 묶여 있는 리스크'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실적과 현금흐름에 당장 기여하지 못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기업가치 평가에서도 할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GBC 본체와 함께 추진되는 공공기여 시설 공사도 숫자만 놓고 보면 앞서 있다. GBC 개발 승인 조건에 따른 기부채납 시설은 기본도급액 6125억원에 진행률 30%로 본체보다 훨씬 앞서 있다. 본 사업이 정체되면서 주변부 성격의 공공기여 시설만 먼저 진척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본체가 멈춰 있는 만큼 기여 시설을 완성해도 실제 개통이나 활용은 불가능해 전체 사업 지연만 심화시키는 구조다.

정체의 근본 원인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설계 변경이다. 기존 105층 단일 타워에서 54층 3개 동 체제로 계획이 바뀌면서 모든 인허가 절차를 다시 밟아야 했다. 용적률, 고도 기준, 교통영향평가 등 각종 행정 프로세스가 통째로 재검토에 들어가 협의 기간은 더 길어졌다. 이에 직접 관여할 수 없는 현대건설은 공정 재개 시점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초고층 개발에서 흔히 발생하는 레이더·항공 안전성 검토, 방재·구조 심의 등도 여전히 남아 있다. 높이가 낮아졌다고 해서 심의가 즉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서울시 역시 사회적·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어 속도감 있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기술도 인력도 갖춰 공사 준비는 끝났지만, 외부 변수로 공정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며 "GBC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이 실적 회복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언제 가능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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