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에 대해 각국 중앙은행이 도입 필요성 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한국은행도 내년 말까지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 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우수한 인프라와 예금계좌 보유율이 높다는 점을 들어 CBDC의 국내 유통 필요성은 미미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향후 지급결제시장 급변 등 리스크관리와 제도적 기반 필요성 등이 제기되고 있다.
11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달 선전시 시민 5만명을 추첨해 1인당 200위안의 디지털위안을 지급하는 공개테스트에 나섰다. 앱을 통해 디지털위안화를 지급받은 시민들은 전자지갑을 개통해 선전시의 슈퍼마켓, 약국 등 3389개 가맹점에서 디지털위안화를 사용했다.
선전시의 공개테스트가 종료된 후 중국 정부는 디지털위안화를 법정통화에 추가하는 법안을 공표했다. 베이징을 비롯한 다른 대도시로 공개테스트를 확대하고 2022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위안화를 공식 사용할 예정인 중국은 이를 통해 위안화를 국제화하고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바하마 중앙은행은 최근 샌드달러(Sand Dollar)를 공식 CBDC로 발행하며 세계 최초로 CBDC를 상용화한 국가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CBDC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면서 지난해 66개국 중앙은행 중 80% 이상이 관련 연구에 돌입했으며 3년 내 CBDC 발행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 중앙은행 비율도 지난해보다 약 2배 높아져 20%에 육박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금융기관간 결제목적인 거액결제용 CBDC 뿐 아니라 현금수요 감소 등에 대비한 소액결제용 연구·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연구방향도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최근 들어 소액결제용 CBD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CBDC는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화폐로 현금 등 법화와 일대일 교환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민간 가상통화와 구분된다.
디지털형태로 발급되는 만큼 CBDC와 통용되는 결제수단 및 연계 플랫폼 확대는 이용자 편의 및 결제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정책적으로 익명성을 제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동안 민간 주도로 이뤄져왔던 다양한 가상통화의 경우 높은 가격변동성과 제한적인 확장성 등으로 인해 범용적인 화폐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는데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동일한 가치의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보장하는 CBDC가 도입되면 민간 가상통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 8월 디지털헤알 발행을 위한 연구그룹을 구성했던 브라질도 오는 2022년 상용화를 목표로 CBDC 발행을 공식화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주요국들은 경제 편의성 및 금융포용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며 CBDC 발행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일본 중앙은행이 연구 및 파일럿 테스트를 추진하는데 이어 유럽중앙은행도 디지털유로 발행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등 관련 연구 강화에 나섰다.
한국은행은 내년 말까지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목표로 CBDC 연구에 돌입했다.
여전히 존재하는 현금수요와 경쟁적 지급서비스 시장, 높은 금융포용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그러나 지급결제 분야의 기술혁신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민간부문의 시장 확장성도 예견하기 어려운 만큼 CBDC 발행 필요성과는 별도로 대내외 지급결제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술적·법률적 필요사항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도 국내 금융시장 환경을 감안할 때 CDBC 발행유인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등 일부 국가가 CDBC 상용화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당장 기존화폐를 대체하기에는 보안체계 구축 등 아직 풀어야할 숙제가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향후 CBDC 발행 등에 대비해 한국은행 등 유관기관과 공조해 관련 리스크를 점검하고 제도적 기반 필요성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CBDC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시점이라고 하면 당연히 한국은행과 협의를 지속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중앙은행이 관련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만큼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이 LG CNS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플랫폼 시범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CBDC 대응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신한은행은 LG CNS와 함께 CBDC의 발행·유통, 충전·결제, 환산·정산 등 예상 시나리오에 대한 모델을 구축해 주요기능을 검증하고 시중은행과 고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계획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중앙은행의 CBDC 도입이 본격화되거나 지급결제시장이 급변하는 시점에서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되면 이를 쫓아가는 것이 너무 늦기 때문에 LG CNS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일 뿐 향후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