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검토 결과가 발표되는 6월 이후 한국은 미·중 사이 결단의 기로에 있으며, 우리 정부가 5월 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국익은 최대, 피해는 최소화'하는 전략적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美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원료의약품·반도체·희토류·전기차배터리 등 주요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100일간 대대적으로 검토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이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바이든 정부 출범 100일, 美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정책과 한국의 대응' 전문가 좌담회를 지난 29일 개최했다. 좌담회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과 관련한 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우리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중간재 수출 비중이 70%에 달해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큰 우리로서는 바이든 정부의 글로벌 공급망 점검 행정명령이 미칠 영향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필요하다”며 “최근 백악관 반도체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을 정도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바이든 정부 산업정책(좌),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 개요(우) ⓒ전경련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본격화...중국에 이어 한국 타격 클 것"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실장은 “바이든 행정명령의 근본적 취지는 미국의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와 중국 굴기 저지를 위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재편”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전략에 한국 대만 일본 등 동맹국들의 투자와 참여를 촉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미국 반도체 산업 지원에 따른 전기·전자 산업 생산량 영향 ⓒ전경련

특히 조 실장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에 따른 경제적 영향에 대해 "중국(-0.35%) 다음으로 한국의 GDP 감소폭이 –0.07%로 크다"며 "반도체가 포함된 전기‧전자 산업의 경우 한국의 생산량이 –0.18%로 중국(-0.32%) 다음으로 크게 타격 받는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박태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前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열린 토론에서는 바이든의 행정명령에서 다루는 반도체·배터리·자원·원료의약품 등 핵심 4가지 산업의 전문가가 참여해 대응책을 모색했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미국의 공급망 전략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사슬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상품보다 원자재의 이동과 시장중심 생산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한국처럼 중간재 생산국가들이 시장을 가진 나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주도적 밸류체인 구축 가능 영역이 있는지 산업구조 재편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시장 관점으로 봤을 때 반도체는 중국, 배터리 소재는 유럽이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상황"이라며 "이를 대신해 미국에 투자를 집행할 때는 수요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내 수요만으로 가동률 유지가 가능한 수준의 투자가 적정해 보인다”며 "국내 기업들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에 참여할 경우 현지 시장 규모와 수요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희토류 등 주요 자원과 관련해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장은 “중국의 희토류 자원 무기화는 언제든 촉발될 수 있는 위협 요소이기 때문에 미국이 쿼드를 통한 희토류 공급망 구축에 성공할지가 관건”이라며 “한국은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에 기댈 것인지, 미국의 쿼드에 참여할 것인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라고 언급했다.

원료의약품과 관련해 이재현 성균관대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바이오 산업 안보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원료의약품 시장은 미국과 동맹국 간 수직적 가치사슬 형성으로 한국의 경우 수혜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완제의약품 기초가 되는 원료의약품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지원과 약가 정상화 정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美 'Made in All of America' 정책 강화...“코로나 겪으며 공급망 문제, 국가 전략으로 중요”

'바이든 정부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정책 현황'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국립외교원 이효영 교수는 “이번 4대 품목에 대한 미국의 공급망 안정화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발표된 Made in All of America, 2.3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 등 일련의 대규모 산업정책과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그간 국제 통상 환경 변화와 기술발전으로 이미 진행되던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가시화된 보건·국가·환경 안보에 대한 리스크를 대외적 명분으로 삼아 대규모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필요시 WTO GPA(WTO 정부조달협정) 등 국제무역규범의 개혁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경련 국제협력실 김봉만 실장은 “코로나와 미-중 갈등을 겪으며 미·중 양국이 자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며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까지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던 상황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오는 5월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미칠 이익은 최대화하고 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는’ 양국 통상관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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