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은퇴를 목표로 극단적으로 절약하며, 소득의 70% 이상을 저축하는 '파이어족(FIRE, FinancialIndependence RetireEarly)'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주목 받고 있다. 파이어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젊은 고학력, 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회의감, 직장보다 본인의 일상과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이 원인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빠른 기간 내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고 더 많은 시간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럼 얼마나 모아야 조기은퇴가 가능할까? 미국의 파이어족은 연간 생활비의 25배면 경제적 자유가 가능하다고 한다. 1년 동안 생활비로 4천만원을 쓴다고 가정하면, 10억원을 모으면 되는 것이다. 10억원을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 연 5~6% 수익이 나면, 매년 4% 정도는 생활비로 사용해도 물가상승률과 시장하락에 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년까지 일을 해도 노후준비가 충분하지 않는 현실에 40대 초반까지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파이어족의 자산관리 방법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근검절약이다. 이들은 소득의 70% 이상 저축하기 위해, 극도로 절약하고 절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지출을 크게 줄이는 것은 생활방식 자체를 전면 개조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파이어족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지출습관부터 점검해야 한다. 주요 지출항목들을 살펴보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불필요한 지출은 과감하게 줄여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 소득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득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 연봉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왠만한 고소득 전문직이 아니라면, 직장에서 받는 연봉만으로 단기간에 10억원 이상 모으기는 어렵다. 따라서 부업을 통한 추가소득으로 목표자금 달성을 앞당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실제 대다수 미국의 파이어족은 본업을 유지하면서 블로그나 유튜브 등을 통해 광고 수입을 얻고, 사업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N잡러라고 한다. 부동산 및 주식 투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추가수익을 얻기도 한다.
세 번째, 같은 금액을 저축하더라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목표자금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달라진다. 투자를 통해 은퇴자산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증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년 4천만원를 저축하여 10억원을 준비한다는 목표를 세울 때, 수익률 0%를 가정하면 25년이 걸린다. 하지만 연평균 수익률이 3%라면 19년, 4%라면 18년, 5%라면 17년 미만으로 준비기간이 줄어든다. 수익률이 1% 높아질 때마다, 은퇴가 1년 이상 빨라지게 된다. 다만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과 경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높은 기대수익은 그만큼의 높은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위험과 수익의 상관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본인의 투자성향과 재무목표 수준에 맞는 방법으로 투자해야 한다.
파이어족으로서 조기은퇴를 목표로 할 때 추가적으로 고려할 요인도 있다. 보통 파이어족은 연 생활비의 25배를 은퇴 목표자금으로 설정한다. 이 정도면 웬만해선 죽을 때까지 은퇴자산이 고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갈수록 더 오래 사는 장수시대이다. 기대수명의 증가에 따라 계획보다 더 많은 은퇴자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최빈사망연령은 88세(남성 85세, 여성 90세)로 사실상 100세 시대에 진입하였다. 은퇴를 앞당길수록 그만큼 은퇴생활기간이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 파이어족이 재정적인 자립을 위하여, 은퇴자금의 대부분을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투자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환경이나 금융시장이 악화하면 은퇴 후 생활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요즘처럼 투자가 쉽지 않은 고령화,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는 꾸준한 투자수익률이 전제되어야 하는 'FIRE'보다 은퇴시점을 최대한 미루는 '평생 현역'이 장수시대 관점에서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 욜로족(YOLO, You Live Only Once)과 경제적인 구속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돈을 모으는 파이어족은 표면적으로는 180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삶,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파이어의 진정한 의미는 조기 은퇴가 아니라, 내가 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자유에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파이어족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불필요한 지출을 통제하며, 부업으로 소득을 늘리고, 더 많이 저축하고 투자하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고 있다. 조기 은퇴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파이어족이 실천하는 자산관리 방법을 따라한다면, 누구나 경제적 자유를 앞당기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