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디스플레이 한 업체는 요즘 '인력 유출'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반도체 업계가 인력난 심화로 디스플레이 인재 등용에 나서면서 자사 직원 이탈이 빈번해진 탓이다.
특히 반도체 업계가 인재 확보를 위해 연봉 인상과 성과급 경쟁 등 처우 개선에 적극 나선 것과 달리 디스플레이 업계는 전반적인 산업 침체로 마땅한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다. 반도체 기업의 활발한 채용과 직원들의 자발적인 이직이 겹치는 속수무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일 년 사이 신입 채용은 어려워진 반면 반도체 회사로 이직하는 직원들은 늘고 있다"며 "회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홍보와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지만 더 큰 반도체 업계로 떠나겠다는 이들에게 무조건 남아줄 것을 부탁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7일 복수의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들은 반도체 인력난의 후폭풍이 '탈디스플레이'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업계는 오랜 기간 만성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부족한 인력은 매해 3000여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빠른 성장에 따른 투자 확대, 공장 신·증설로 반도체 인력 수요는 빠르게 늘어난 반면 전문인력 공급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향후 10년간 누적 부족 인력이 3만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디스플레이 업계의 불투명한 산업 전망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업계 처우, 인지도 등으로 인해 저연차 인력을 중심으로 반도체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 중국 기업들이 거액의 액수를 내세워 국내 반도체 인력들을 스카우트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풍경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디스플레이에도 반도체 공정과 비슷한 면이 많다"며 "디스플레이와 장비 산업은 사양 산업으로 접어들고 레드오션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업계 인력들이 반도체 쪽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한국 엔지니어가 중국으로 간다고 했는데 이제 국내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디스플레이 업체 인력들이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다"며 "디스플레이 학과 출신의 반도체 업계 취직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인력난 타개 일환으로 사업 영역을 반도체와 이차전지로 확장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를 모태로 하는 에스에프에이(SFA)는 최근 스마트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이차전지와 유통, 반도체 등 비디스플레이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성과는 고무적이다. SFA는 지난해 총 8041억원의 수주 실적 중 71%에 달하는 5703억원을 비디스플레이사업에서 거뒀다. 사업별 성장세도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부문 수주액은 2020년 485억원에서 200% 증가한 1458억원을 기록했다. 같은기간 이차전지는 수주액 기준 1664억원에서 2254억원으로 35% 늘었다.
반도체 신뢰성 분석 기업 '큐알티'는 최근 3차원(3D) CT 솔루션 고도화로 이차전지 분야 검증에 속도를 냈다. 3D CT는 반도체 소자 및 제품을 360도 회전시켜 촬영한 수천 장의 X선(X-ray) 사진들을 모아 3차원 입체영상과 이미지로 구현한 비파괴 방식 불량검사 장비다. 원하는 축을 기준으로 다양한 각도와 깊이에서 제품 내부 데이터를 확보 가능하다. 반도체 소자 및 제품의 내부 구조와 결함, 수치적 정보 등에 대한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업계 다른 한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산업 내 인력 유출이 빈번해지면서 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며 "인력난 해결책 일환으로 반도체와 이차전지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전문가들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성장을 위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전략첨단기술 지정 △특별법 제정 △세제 혜택 등이 꼽힌다.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은 지난 1월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논의에서 제외되는 등 국가전략첨단기술 선정에서 후순위로 밀린 상황이다.
김용석 홍익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전세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 점유율은 80%"라며 "디스플레이 산업이 반도체와 같이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스플레이 산업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 중 하나"라며 "주력 산업에서 전세계 시장의 80% 점유율을 차지한 것은 올레드 밖에 없다. 정부는 경쟁력 있는 산업을 지속적으로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을 위한 집중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는 이달 서울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2022년 상반기 OLED 결산 세미나'에서 "중국 업체들은 인센티브 같은 형식으로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우리도 특별법 제정과 세제 혜택 등 정부 차원의 특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인건비를 올리기도 어렵고, 인력은 유출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