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악화로 올 하반기 '반도체 겨울'이 불어 닥칠 거란 전망이 이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돌파구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중국 주요도시 봉쇄 등 각종 대외 불확실성이 산적한 상황에서 기술 선점과 사업 확장을 통해 장기전 준비에 돌입하고 있다.
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대만 시장조사 기관 트렌드포스는 올 3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이 2분기보다 8~13%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2분기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낸드 플래시 공정의 고도화로 인해 공급 과잉이 심화됐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경기 침체 우려로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고객사 등의 주문량이 감소하는 점도 가격 하락의 요인으로 꼽힌다. 낸드 플래시 하락세는 올 4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D램 가격은 5~10%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경기에 불확실성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기술선점과 사업확장으로 극복하겠다는 각오다.
SK하이닉스는 전날 국내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키파운드리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지난해 10월 말 키파운드리 지분 100%를 5758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은 지 약 9개월 만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비메모리반도체 역량이 한층 강화하게 됐다. SK하이닉스의 매출 구조에서 메모리반도체 비중은 95%에 달한다. 이에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위주의 사업 구조를 개선하려면 파운드리와 팹리스(설계 전문기업) 부문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충북 청주에 본사를 둔 키파운드리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8인치 웨이퍼를 기반으로 전력 반도체(PMIC),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위탁 생산해왔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를 다시 품으면서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생산 능력이 2배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SK하이닉스는 신제품 출시를 통해 수익 다각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SK하이닉스는 현존 최고층 238단 낸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238단 512Gb(기가비트) TLC(Triple Level Cell) 4D 낸드플래시 샘플을 고객에게 출시했고, 내년 상반기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PC 저장장치인 cSSD(client SSD)에 들어가는 238단 제품을 먼저 공급하고, 이후 스마트폰용과 서버용 고용량 SSD 등으로 제품 활용 범위를 넓혀간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2월 176단 낸드를 개발한 지 1년 7개월 만에 차세대 기술개발에 성공했다"며 "특히 이번 238단 낸드는 최고층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제품으로 구현됐다는 데 의미를 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성장성 저하에 대비해 파운드리 사업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3나노 GAA 공정 1세대 파운드리 양산에도 돌입했다. 3나노 공정은 첨단산업의 성장에 필수적인 고효율·저전력·초소형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3나노 GAA 공정을 고성능 컴퓨팅(HPC)에 처음 적용하고, 주요 고객사와 협력해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대표이사(사장)는 "삼성전자는 이번 제품 양산으로 파운드리 사업에 한 획을 그었다"며 "핀펫 트랜지스터가 기술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 새로운 대안이 될 GAA 기술의 조기 개발에 성공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은 하반기 반도체 시장의 약세가 유력한 만큼 단기 설비투자 계획을 다방면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진행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로서는 지나친 낙관론, 비관론도 어렵고 다각도로 여러요소를 보며 유연하게 대처하려 한다"며 "이런 상황이어서 그동안 강조한 투자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중장기 수요 대응 위한 투자는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다양한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재고를 활용한 유연한 공급을 우선시하되, 단기설비투자는 여기에 맞게 탄력적으로 재검토 해야한다는 판단을 갖고 있다. 설비투자를 유연하게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를 포함한 하반기 메모리반도체 시장 수요가 어떻게 될지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메모리 업계와 고객사 단위에서 재고 수준이 기존 평균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내년 시설투자는 상당 폭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시장 수요에 맞춰 조금 움직일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